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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속의 연변과 연변의 세계화(박우 한성대학교)

2016-08-16 조글로 zoglo.net 潮歌网



조글로 편집자주: 중국조선민족사학회와 조글로가 공동주최한  "세계화속의 연변, 우린 뭘 해야 하나?" -중국조선족소장파학자 간담회가 2016년 8월 14일 오후 2시 조글로 회의실(연길)에서 열렸다. 아래 글은 간담회에서 발표한  강연고를 정리한것이다.


[세계화속의 연변,우린 뭘 해야하나?]

-중국조선족소장파학자 간담회 <강연 2>


세계속의 연변과 연변의 세계화

 
박우 (한국한성대학교 교양학부) 





세계화의 개념정의는 사람마다 달리 합니다. 그럼에도 이 사람들이 공유하는 내용이라면 평화와 존중을 전제로 한 문명의 교류과정에 발생하는 다양한 현상이라고 저는 보여집니다.


 연변사회가 개혁개방 이후 급격한 변화(발전)를 경험하고 있다는데 대해서는 이견이 없을 것입니다. 이미 연변사람들도 이 변화를 세계속에 위치시켜 그 의미를 살펴보고 방향을 진단해 보고자 한적 있습니다.(어렸을 때 연변TV에 ‘세계속의 연변’이라는 문구가 들어간 프로그램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연변사회의 변화를 세계속에 위치시켰다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이미 연변의 세계화에 대해 입을 열고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하였다는 뜻입니다. 말 그대로 연변은 세계속의 연변이 되었고, 세계속의 어떤 연변이 될 것인가가 연변의 세계화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주된 관심사였던 것 같습니다.
 
그럼 대체 세계화, 더군다나 연변의 세계화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요?


개혁개방 이래 중국은 급격한 사회경제적 변화를 경험합니다. 중국이라는 거대 땅덩어리에 “새로운” 것들이 쏟아져 들어오지요. 그런데 좀 면밀히 살펴보면 다른 무언가가 보입니다. 문명 교류의 핵심 키워드인 인구와 자본의 이동을 보겠습니다. 중국을 방문한 외국인 규모, 그리고 중국에 거주하고 있는 외국인 규모를 살펴보니 아시아국가에서 온 인구의 비중이 상당히 높습니다. 


개혁개방 이후 동남연해지역으로 유입된 자본 중 화교자본의 비중이 상당하다는 것도 익히 알려진 사실입니다. 우리가 개혁개방 하면서 저도 모르게 세계화를 경험하고 있다고 자연스럽게 말하고 있었는데, 결국 이 곳으로 대량 유입된 사람과 자본은 아시아 다른 나라의 사람들과 본래 “중국인”이었던 사람의 자본이었습니다. 옆동네 한국으로 가봅니다. 한국도 이미 “다문화사회”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다문화의 내용인 외국국적(또는 외국인)자 구성을 보면 아시아 다른 나라에서 유입된 인구가 압도적으로 높습니다. 동시에 한국의 산업화와 신자유주의 전환과정에 재일교포와 재미교포의 자본이 대량으로 유입되었다는 것 역시 익히 알려진 일입니다. 


한국의 세계화 과정에도 아시아인이 유입되었고 본래 자국민이었던 사람들의 자본이 유입되었습니다. 일본이나 대만지역도 대동소이하니 지나갑니다. 그러니까 우리 동아시아 국가가 경험하고 있는 세계화는 아시아인들과의 교류속에서 발생하는 “아시아화”가 아닌가 싶습니다. 기실 서울대학교의 장경섭 교수는 유럽의 상황에 비추어 “아시아의 아시아화”라는 말을 한 적 있습니다. 저도 이 말이 설득력이 있다고 봅니다.


연변사람들은 어떠합니까. 한국, 일본을 옆동네 놀러가듯 다닙니다. 중국 동남연해지역으로의 왕래 너무 쉽습니다. 연변에 유입된 외국인과 외국자본은 영미권에서 왔을까요 아시아권에서 왔을까요? 이런 논리라면 연변의 세계화는 “연변의 아시아화”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이렇게 세계라는 보편의 외투가 씌워지지 않았기 때문에, 연변의 과거적 요소들은 충격을 덜 받은 채 생명을 연장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문명의 충돌이 일어났다고 볼 만한 충분한 근거가 없으니까 말입니다. 이 과거적 요소의 일부는 산업으로 변신하였고, 지역(연변) 차원의 새로운 문화산업의 개발을 대신(또는 대체)하게 됩니다. 이 과거적 문화산업은 누군가에 의해 유지되고 재생산되기를 요구받습니다. 아주 성공적으로 지역을 대표하는 브랜드로 자리매김합니다. 다른 한편 근대화 과정에 멸종해야할 과거적 요소들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요소들조차 스멀스멀 고개를 다시 쳐듭니다. 사회의 보수화에 일조하고 기생하는 조건으로 성공적으로 자리매김합니다.


제가 세계최대검색엔진에서 “연변”을 키워드로 이미지를 검색해 보았습니다. 경이로울 정도로 이미지가 많이 뜹니다. 동시에 똑같이 경이로울 정도로 비슷한 이미지가 반복됩니다. 금새 분류할 수 있었습니다. 한가지는 일송정과 모아산 정상에서 내려다본 수전을 비롯한 우리가 자사랑스레 내세우는 벼밭입니다. 두 번째 부류는 흑백으로 된, 이 지역이 어떻게 해방되었고 자치정부가 수립되었는지에 관한 이미지입니다. 


세번째 부류는 한복, 상모, 장고 등 복장과 악기와 관련된 이미지입니다. 이렇게 이미지를 통해 연변에 대한 설명과 서사를 유추해 본다면 첫째는 농촌화된 경재생활, 둘째는 혁명화된 정치생활, 셋째는 전통화된 문화생활로 부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가 21세기를 살고 있지만 19세기말 20세기 초중반의 모습을 남한테 자랑스럽게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또는 어쩌면 그런 모습으로 비춰지고 있었습니다. 연변사람들이 생각하는 연변의 세계화는 기실 연변의 아시아화였고, 이 역설로 연변에 대한 설명과 서사에는 “현대화된 사회생활”이 인색하게도 없었습니다. 과거적 요소가 소중하지 않다는 것이 아닙니다. “라스베가스에 버금가는 연길 야경”도 있는데 왜 연변은 할 이야기가 지난 세기의 것밖에 없을까요?
 
“현대화된 사회생활”의 서사가 부재한 것은 도시문명의 담론이 부재한데서 기인한다고 봅니다. 비까번쩍한 건물이 즐비해졌고, 자가용은 꼬리를 물고 다닙니다. “뚜포~”할때까지 술 먹었던 “썽피쥬땐”은 커피숍으로 바뀌어 젊은 남녀들이 홀짝홀짝 커피를 마십니다. 목탄불이 튕기어 소금을 뿌려넣던 촬댄은 주식회사가 되어 도시민들을 열렬히 환영하고 있습니다. 콘텐츠가 넘칩니다. 도시로 보는 연변의 근현대는 너무 흥미롭고 다채롭습니다. 충분히 세계의 마당에서 보편을 이야기 할 수 있는 내용입니다.


도시를 구성하였던, 그리고 현재 구성하고 있는 요소들이 정리되고 스토리가 만들어짐으로써 과거적 생활의 양상이 현대적 생활의 내용과 함께 어우러질 때 비로소 “연변의 세계화”가 가능한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세계화속의 연변,우린 뭘 해야하나?]

-중국조선족소장파학자 간담회 <강연 1>

연변, 비대칭 유동 바꾸고 교향(僑鄕)으로 거듭나야/박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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