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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링] 버렸다, 비웠다 그리고 삶이 밝아졌다

2016-03-23 조글로 zoglo.net 潮歌网



홀가분한 삶 추구 '미니멀 라이프' 열풍



미니멀 라이프를 실천하고 있는 주부 남상미(36)씨의 거실. 이틀에 걸쳐 거실을 어지럽혔던 물건들을 정리했다. 책과 여러 소품으로 가득한 옛 거실(왼쪽)을 깔끔하게 비우고 꼭 필요한 책상과 의자만 남겼다(오른쪽). 남상미씨 제공


“혹시 필요할지도 모르잖아.” “급할 때 없으면 정말 불편할거야.” 이런 생각으로 준비물을 눌러 담은 여행가방. 도통 잠기질 않아 있는 힘을 다해 가방을 고문 혹사 학대한 경험, 한 번쯤 있을 것이다. 웬걸. 출발과 동시에 애물단지가 된 짐. 여행일정 내내 허리 휘게 이고 지고 끌고 메고 다녀야 했을 테다. 구석구석 눌러 담은 탓에 유용하게 쓴 건 일부. 집으로 돌아온 뒤, 풀어헤치는 가방에서 우수수 쏟아지는 미개봉 짐짝들.

우리의 인생 여정도 꼭 이런 여행을 닮은 건 아닐까. 올해는 꼭 읽을 계획인 소설을 포함해 책장을 가득 메운 책들. 화려한 무늬에 끌려 “이건 사야 해”를 외쳤지만 찬장에 고이 모셔둔 접시세트. 의무감을 불태우며 집요하게 모았지만 선반에서 잠자는 DVD 컬렉션. 이 짐을 이고 멜 공간을 마련하느라 꼬박꼬박 빠져나가는 월세 혹은 대출이자. 이대로 좋은 걸까.

물건에 포위된 채, 인생이란 여행의 짐 가방만 불리며 살아가는 삶에 회의를 느끼는 이들이 늘고 있다. 꼭 필요한 만큼만 남기고 홀가분하게 살아 보자는 것. 이런 희열을 맛본 이들에게, 이제 고가구로 발 디딜 틈 없이 들어찬 대저택은 감탄이 아닌 지탄의 대상이다. 더 적게 가짐으로써 더 풍요롭게 누리는 삶의 시대. 바야흐로 미니멀 라이프의 시대다.

무비판적 소유에 대한 회의가 열풍 불러

영미권에서 미니멀 라이프 열풍이 촉발된 것은 2010년 무렵이다. 웹사이트 ‘미니멀리스트(TheMinimalists.com)’의 등장이 주효했다. 운영자는 잘 나가던 회사에 돌연 사표를 던지고, 편안한 소파와 책 몇 권만을 가진 20대 후반의 청년들이다. 조슈아 필즈 밀번과 라이언 니커디머스는 “좋은 차, 큰 집, 넘쳐나는 물건을 가졌지만 주 70~80시간을 일하고 더 많은 물건을 사들이는 일로는 공허함을 채울 수 없다”며 물건을 줄이고 더 목적이 분명한 삶을 살기로 결심했다. 이 여정을 소개한 사이트는 1년 만에 방문자수가 월 10만 명에 달했고,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았다.

같은 시기 일본에서는 ‘단샤리(斷捨離)’가 최고 유행어로 떠올랐다. 요가의 행법(行法)인 단행(斷行), 사행(捨行), 이행(離行)에서 착안한 말로, 일상에서 불필요한 것을 끊고 버리고 떠난 심플한 삶, 처세 등을 일컫는다. 단샤리 열풍을 타고 스타덤에 오른 정리 전문가 곤도 마리에의 정리법 등은 영미권에서도 화제를 모았고, 그는 2015년 타임 100인에 선정됐다.

일본에서는 특히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이 소유에 대한 회의에 기름을 부었다. 일본 미니멀 라이프 연구회가 지은 ‘아무것도 없는 방에 살고 싶다’(샘터)는 물건을 적극적으로 버린 10인의 도전기를 소개하는데, 적잖은 이들이 “동일본 대지진”을 그 계기로 지목한다. 다급한 상황에서 수납장에서 마구 잡혀 나오는 쓸모 없는 물건들을 보며 그들은 외쳤다. 대체 이 많은 물건들은 다 뭐였을까! “그렇지 않아도 짐이 많은 본가는 지진으로 엉망이 됐어요. 그 많던 가구들이며 물건이 쓰러지거나 바닥으로 떨어지는 바람에 할머니가 정말 위험했거든요.”(‘아무것도 없는 방에 살고 싶다’)

국내에서는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이들 저서가 번역 출간돼 서점가를 강타하며 미니멀 라이프 열풍이 상륙했다. 회원 7,300여명의 네이버 카페 ‘미니멀 라이프’의 성장세도 눈에 띈다. ‘버리는 삶’에 대한 의견과 노하우를 나누는 이 카페는 2014년 12월 개설됐다. 최근엔 하루 회원수가 100명씩 급증해 두 달새 회원수가 30배 이상 늘었다. 운영자인 황윤정(48)씨 부부는 “완벽함이란 더 이상 보탤 것이 없을 때가 아니라 더 이상 뺄 것이 없을 때 이루어진다”란 슬로건을 대문에 내걸었다. 회원들은 미니멀리즘 실천 전후 사진을 공유하고, 찬의 가짓수를 줄인 ‘미니멀 식단’도 소개한다.

최근에는 ‘미니멀리즘 게임’을 진행 중이다. 밀번과 니커디머스의 사이트에서 시작된 게임이다. 매일 버린 물건의 사진을 찍어 올리려 확인하고, 매달 1일에는 1개의 물건, 10일에는 10개를 버리는 게 규칙이다. 필요 없는 물건을 기부할 기부처 정보도 나눈다.


일본 미니멀 라이프 연구회가 소개한 주부 아즈키씨의 거실. 동일본 대지진을 계기로 단샤리(斷捨離)를 실천하고 있다. 거실에는 텔레비전, 탁자, 화분만 있다. 샘터 제공

버린 뒤 비로소 소중한 것만 남았다

미니멀리즘에 관한 책에 반해 이 카페를 시작했다는 황씨는 미니멀리즘을 “단순한 정리정돈이 아니라, 내 주변에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것과 인생에 가치를 부여하는 것만 남기는 삶의 태도”라고 설명했다. ‘버리는 것’ 자체가 목적이 아니란 얘기다. “맞벌이라 직장에서 퇴근하고 집에 오면 늘 또 다른 일터로 출근하는 기분이었어요. 집에도 일이 많으니 쉬지 못하고 짜증나고 피곤했는데, 결국은 잡동사니를 버리지 못해 그랬던 거죠. 물건을 줄이고 난 뒤론 특별히 청소를 하지 않아도 모든 게 수월해졌어요. 이걸 기록으로 남기자는 생각에 카페를 시작했는데, 공감하는 분들이 폭발적으로 늘었죠.”

주부 남상미(36)씨는 최근 “뭘 사야 하지”란 집착과 스트레스에서 벗어나며 불면증까지 덜어냈다. 과거엔 인테리어에 관심이 많아 SNS, 블로그 등의 사진을 유심히 챙겨봤고, “갖고는 싶지만 비싼 물건의 가격”에 쓴맛을 다셨다. “중저가 브랜드에서 물건을 사며 스트레스를 풀기도 하고, 수납 소품을 사들였는데 갈수록 점점 정리는 안되고 쌓이기만 하더라고요. 뭔가 잘못됐다 싶었죠.” 이틀에 걸쳐 온 집안에서 꼭 필요하지 않은 것들을 선별해 내다버리며 거실을 가뿐히 비웠다. 막상 7년 된 컴퓨터를 처분하면서는 고심이 깊었지만 눈을 질끈 감고 추억에의 집착도 덜어냈다.

“소중한 추억은 사진으로 남기고, 꼭 필요한 것 외에는 무료 나눔, 기부 등을 통해 처분했어요. 한참 안 쓴 아이 장난감은 필요한 친구들에게 나눠줬죠. 불면증이 심했는데, 이렇게 버리고 나서 오랜만에 잠을 제대로 잤어요. 어디 가서 뭘 사야겠단 걱정, 물건에 대한 집착을 버리니 생각도 삶도 단순해지는 것 같아요.”

일본 미니멀 라이프 연구회는 “이래도 될까” 싶을 정도로 버린 이들의 사연을 소개한다. 500~600권이 넘는 책과 산더미 같은 옷을 모두 처분한 회사원, 거실에 소파 겸 침대로 사용하는 에어 매트리스 한 장만 남긴 증권 딜러, 10년간 보관한 웨딩드레스를 비롯한 추억의 물건을 모두 버리고 비소로 후련함을 맛본 주부 등. 이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하는 버림의 미학은 “자신이 소중히 다룰 수 있는 적당량만 갖는 것의 기쁨”이다.


일본 미니멀 라이프 연구회가 소개한 주부 아키씨의 거실. 16.2㎡(5평)의 작은 거실을 간소하게 꾸몄다. “신중하게 고른 물건들로 작은 집을 최대한 즐기며 산다”는 것이 그의 신조다. 샘터 제공


“자주 ‘미니멀리스트란 수도승처럼 사는 거라고 보면 되나요?’란 질문을 받는데 절대 그렇지 않죠. 현재 생활은 소유한 물건들이 살아가는데 필요한지 필요하지 않은지를 명확히 한 결과일 뿐이에요.”(‘아무것도 없는 방에 살고 싶다’)

이들에겐 집이 더 이상 ‘언젠가 쓸’ 물건들의 창고가 아닌, 치유 휴식 영감의 공간이다. 이런 환호에도 아직 ‘비움의 미학’에 동의할 수 없다면, 이 얘길 들어보자. ‘국내 1호 정리컨설턴트’ 윤선현씨의 기회비용 계산법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2015년 서울 아파트 가격 평(3.3㎡)당 약 2,000만원. 집에서 자리만 차지하는 애물단지 러닝머신이 차지하는 자리는 대략 1㎡, 딱 613만원 어치다. 창고 방이나 옷으로 가득한 드레스 룸이 있다면 어떨까. 작은 방이 2.5평이라면, 이 물건을 보관하는 데만 5,000만원을 쓰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 우리를 홀가분하고 산뜻하게 하는, 심지어 부자로 만드는 새 슬로건은 다음과 같다. “어머 이건 버려야 해!”

설레지 않는 물건은 모두 다 버려라

그러나 결심만 했다고 누구나 ‘버릴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건 아니다. 감정의 브레이크가 자주 작동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본 내 정리의 여신으로 통하는 곤도 마리에는 저서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더난출판)에서 “정리에도 원칙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한창 버리기 축제를 벌이다 옛 사진을 발견하고 아련한 청춘 회상에 빠지는 등의 대표적 불상사들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대원칙은 ▦머릿속에 이상적인 생활상을 그려라 ▦장소 별이 아니라 물건 별로 정리한다 ▦의류, 책, 서류, 소품, 추억의 물건 순으로 정리하자 ▦만졌을 때 설레는지에 따라 버릴지 남길지 판단하라 등이다. 버릴 물건을 방 별로 정리하다 보면, 결국 짐이 이 방 저 방 옮겨 다니기만 할 뿐 진전이 없는데다, 정리의 순서가 틀리면 정리 속도가 느려지기 때문이다. 책과 서류는 버리기 작업 중에서도 고난도. 하지만 그는 단호하게 말한다. “이 쓸데 없는 책과 서류만 정리해도 머리 속이 맑아진다.”

네이버 카페 미니멀 라이프 운영자 황윤정씨는 “아까운 물건을 정리하다 죄책감이 들 땐 기부하는 방법도 적극 찾아보라”고 조언한다. 어딘가에서 쓸모를 되찾을 물건의 제자리를 찾아준다는 생각만으로도 고민이 훨씬 수월해진다.

이런 버리고, 비우기의 최고 경지는 ‘욕심과 집착 내려놓기’다. 비우고 덜어내다 보면, 정말 우리 삶에서 간절히 덜어내야 할 것이 물건뿐이 아니라는 생각에 이르기 때문이다. 불필요한 인간관계, 상념, 걱정, 식욕 등 비워야 할 대상은 마음먹기에 따라 무한히 확장된다. 이런 군더더기 없는 삶은 하나의 진리만을 오롯이 남긴다. 우리가 진정 가질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지금 앞에 주어진 매 순간뿐이라는 것.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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