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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보니] 엄마를 그리며 (김경진)

조글로 潮歌网 2020-09-15


수필

엄마를 그리며


김경진




김경진 : 중국 흑룡강성 전임 녕안시 부시장, 전임 목단강시 민위주임, 현 흑룡강성민위 판공실주임.


 

1

내 기억 속에 세상을 본 것은 엄마의 어깨에서 시작된다. 그것은 안가에서부터 발해진으로 가는 길이었고, 사범학교로 가는 길이었다. 좀 더 먼저로 말한다면 동경성으로 가는 길이었다. 물론 그때 걸은 것은 탄탄대로가 아니었다. 그때는 대로라는 게 없었고, 지금처럼 콜택시를 부르는 건 더구나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것은 마을 뒤편의 수로를 따라 난, 참호처럼 구불구불하고 울붙불퉁한 흙길이였다. 


개울을 만나면 여름에는 신발을 벗고 바지가랭이를 걷어붙인 채 건너가야 했다. 엄마는 한 손으로는 신을 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등에 업은 나를 떠받들어야 했다. 겨울에는 얼음 위를 걸을 때면 뽀샤삭 소리가 났다. 게다가 내 코물과 침 그리고 바람에 흘린 눈물로 엄마는 잔등이 푹 젖기도 했다. 


엄마는 이것 저것 얘기하면서 걸었는데 알아들을만한 것도 있고 알듯말듯한 것들도 있었지만, 그때로부터 나는 일부 도리들에 대해 알게 되였다. 엄마의 어깨 위에서 나는 대지와 들판, 마을을 보았고 이웃들과 친지들을 알게 되었다. 엄마의 어깨 위에서 나는 고개를 들어 세상을 보고, 더 멀리 만물을 보는 법을 배우게 되었다…


2
어릴 적 나는 좀 게걸스러웠다. 하지만 막내였으므로 다들 양보를 했다. 그때는 조선식 쇠솥으로 밥을 지었다. 솥 주변에 잡곡떡을 부치고 가운데에 조그마한 양푼을 놓고 입쌀밥을 쪄내었다. 그것은 아빠와 내게만 차려지는 것이였다. 그 때문인지 나는 지금도 잡곡떡은 싫어하지만 쌀밥은 아무리 먹어도 질리지 않는다. 후에 나는 이상한 버릇이 생겼다. 콩기름을 달궈 간장에 넣어 소스를 만들어 밥에 비벼먹는 것이였다. “고양이 밥을 먹냐?” 형은 이러는 나를 늘 눈꼴사나워했다. 


나쁜 버릇때문에 나는 쩍하면 소화불량에 걸려 구토하고 설사했다. 이럴 때면 엄마는 내가 먹고 소화불량에 걸렸던 음식을 양푼에 담아 덥혀서는 온도가 맞춤해지면 내 배 위에 올려놓고 배꼽 주위로 맷돌 돌리듯 빙빙 돌렸다. 그러면서 “내 손은 약손이다, 내손은 약손이다! “고 중얼거리군 했다. 그런데 번마다 그렇게 해서 효험을 보군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방법이 타당하기도 했지만 아이를 사랑하는 강한 의념이 신약이 된 것 같다!


3
엄마는 귀볼이 컸다. 보통 사람들보다 훨씬 컸으므로, 나는 엄마를 보러 갈 때마다 종종 장난스럽게 엄마의 귀볼을 잡아보곤 했다. 의학적으로 귀볼이 큰 것은 대사가 잘 되고 미세 순환이 잘 되는 표현이라고 한다. 민간에서 귀가 크면 복이 있다고 하는 것은 일리가 있는 셈이다. 엄마는 코도 예뻤다. 오똑하고 단정했으며 코구멍도 가지런했다. 하지만 나는 어릴 때 늘 엄마의 코구멍이 한쪽이 더 크다고 느껴졌다. 그것은 마음속 어두운 그림자로 자리잡았다. 그것은 어릴 때 생긴 병근이였다.


아마 소학교 5학년 쯤이라고 생각된다. 그때 엄마와 같이 우물에 물 길으러 간 적 있다. 그것은 지레대 원리로 물을 끌어올리는 우물이었다. 긴 나무 장대 가운데 받침대가 있었고 뒤에는 돌을 묶어 달아 균형을 이루게 했고, 앞에는 바줄로 물통을 매달고 있는 거였다. 물통을 우물 수면에 내려 놓고 힘껏 저어야 물을 채울 수 있었다. 얼마전에 방영된 ‘부모님의 사랑’이라는 드라마에 바로 그 장면이 나오는데 아주 생동감 있다고 느껴진다. 


물통에 물이 그득 차자 나는 엄마더러 뒤에서 도우라고 하고 멜대로 물통을 메겠다고 나섰다. 멜대의 앞 갈고리를 물통에 걸고 일어서던 나는 엄마가 뒤에서 큰소리 치는 바람에 깜짝 놀라 뒤돌아보았다. 엄마는 코를 움켜쥐고 있었다. 얼마나 아팠던지 눈물까지 흘렸다. 엄마가 멜대 갈고리를 물통에 걸기도 전에 내가 일어서면서 그 갈고리가 그만 엄마의 코에 걸렸던 것이다. 엄마는 아프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우습기도 했다. 다행이 크게 다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후부터 나는 늘 엄마의 콧구멍이 한쪽이 더 크다고 느껴졌다. 물론, 어느 쪽 콧구멍인지는 도무지 생각 나지 않았지만.


4
우리 가족은 쑥에 특별한 애정을 가지고 있다. 뜸은 엄마가 병을 고치는 좋은 방법이었다. 소년시기 내 눈에 비친 엄마는 집안 형편이 가난해서 고달픈데다 몸이 허약했다. 하지만 내 기억 속에 부모님은 종래로 병원에 가 진찰을 받는 법이 없었다. 아프면 머리에 수건 한장 적셔 올려놓고 누워 있었다. 기껏해야 동네 진료소에 가서 알약 몇알을 얻어오군 했다. 더 많이는 엄마 몸 곳곳에 난 뜸 자국이였다. 큰누나와 둘째누나, 셋째누나는 모두 엄마를 도와 몸 이곳저곳에 뜸을 떴다. 지금처럼 자국이 남지 않는 뜸이 아니였다. 엄마는 그렇게 내내 인내와 의지로 질병과 싸워왔다. 이렇게 우리는 뜸을 잘 뜨는 가문이 되였다. 


큰누나와 둘째누나, 형이 뜸을 떴을 뿐만 아니라 형수까지 뜸을 잘 떴고 나와 셋째누나도 모두 뜸 료법을 깊이 믿고 있었다. 아래 세대인 김영은 중의 뜸 전문가가 되였다. 할머니에게서 물려받아 사업으로 삼고 있다. 성걸이는 뜸에 대해 워낙 크게 믿지 않았지만, 요 며칠 전염병으로 집에만 붙어 있다가 심심한 김에 한 코스로 뜸을 떠줬더니 너무 시원하다는 것이다. 나는 속으로 은근히 ‘그 할머니의 손자가 맞긴 맞군!’고 생각했다. 이 때문에 단오에 쑥을 따는 일은 어렸을 때 꼭 해야 하는 일과로 되였는데 7~8세때부터 여러해동안 중단한 적 없다.


아침 일찍 일어나기 싫어하는 나지만 이날만은 얌전하게 일찍 일어난다. 그리고는 잠이 덜 깬 눈을 비비며 마을 서쪽에 있는 보리밭에 가서 이슬로 손을 씻고 세수를 한다. 쑥을 발견하면 ‘꼭 왼손으로 뽑아야지’하고 생각한다. 셋째누나가 쑥은 왼손으로 뽑아야 약효가 좋다고 했다. 나를 속이는가 해서 셋째누나가 쑥을 뽑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본 적 있었는데 그도 역시 왼손으로 뽑는 것이였다. 그래서 나는 왼손으로 쑥을 뽑아야 약효가 좋다는데 대해 믿어 의심치 않았다. 손이 너무 힘들어서 똑바로 펼 수 없어도 꼭 그렇게 버티군 했다…


해마다 단오는 명절이기도 하지만 일하는 날이기도 하고 더우기는 마음속으로 참배를 하는 날이기도 하다. 맑고 그윽한 쑥잎에는 엄마가 건강하기를 바라는 무한한 기대와 간절한 바람이 담겨 있다. 남의 눈에는 더 이상 평범할 수 없는 쑥이 우리에게는 그토록 친절하고 향기로운 것이다. 오늘에 와서도 나는 뜸이나 쑥이라는 글자에 무엇보다도 민감하고, 쑥 내음에 특별히 예민하다. 그리고 여러 명절 중에서도 단오에 각별한 애정이 있다.


5
래일은 엄마의 100세 생신이 되는 날이지만 전염병 때문에 제사를 지내러 갈 수 없다. 성길이는 위챗 대화방에서 기념하자고 했다. 정세가 이러하니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 의식이 없지만 마음만은 변함없다. 그리고 이것 또한 지금으로서는 가장 좋은 방법이 아니겠는가.


대화방에서 뭐라 말할까? 할 말은 태산같았지만 무엇부터 말했으면 좋을지 모르겠다. 어머니의 모습이며, 표정, 웃는 얼굴이 머리 속에 겹쳐졌으나 어느 것도 또렷하지 않았다. 아마 이것이 바로 음양으로 나뉜 슬픔이리라. 가슴속에서 슬픔이 솟구쳐 오르며 목이 꺽 막히고 눈시울이 젖어든다…


엄마가 우리 곁을 떠난지도 어언 2년, 꿈속에서나마 자주 만날 수 있다. 과거 겪었던 일들, 혹은 겪지 않았던 일들 모두가 꿈속에서 생생한 한 장면이 되여 엄마와 함께 나타난다. 그래서 나는 지금 밤을 좋아한다. 꿈속에서나마 엄마와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악몽으로 꿈속에서 정신없이 허우적거려도 엄마를 만나는 일이 좋다. 


엄마의 생일이며, 명절이며 모두가 이 아들이 기분 좋게 집으로 가는 날이였다. 그 나날들은 즐겁고, 기운 넘치고, 행복한 려정이였다. 지금도 집생각이 날 때가 많다. 혈육들과의 만남이 생각날 때마다 저도 모르게 집으로 떠날 행장을 준비한다. 그러다가도 문득 깨닫고 의기소침해진다. 그리고는 그 끝없는 유감과 소리없는 한숨을 가슴속 깊이 묻어버린다.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은 인지상정이다. 어머니를 잃고 슬퍼하는 것도 세상 사람 모두가 그러할 것이다. 하지만 나의 마음속 엄마는 영원히 세상에서 가장 좋은 엄마이다. 우리의 마음속에 엄마는 세상에서 가장 남다르고, 가장 자애로운 엄마였다. 이는 아마 이 세상 모두 아들딸들의 똑 같은 감수이리라…


자세히 생각해 보면 엄마는 사실 평범하고도 또 평범한 그 세대 사람이였다. 1900년대 초로부터 2000년대 초에 이르기까지 100년이라는 시간, 엄마의 전반생은 물질이 결핍하고, 사회가 불안하며, 가정이 궁색하고, 사는게 고달팠던 세월이였다. 


청춘의 동경과 예쁜 얼굴, 빛나는 세월은 모두 그 시대와 더불어 퇴색하고 사라졌다. 그렇다면 엄마의 후반생은 아이들을 키우며 ‘나’라는 개념 없이 살아온 세월이였다. 아이들이 잘 커가는 것, 그것은 엄마의 생활의 전부였고, 엄마에게 있어서의 성공이였다. 남자애, 녀자애, 큰애, 작은애, 아래세대와 또 그 아래세대의 아이들…


이런 펑범함이, 이런 평범한 일상이 한해 또 한해, 하루 또 하루 조금 조금씩 자손들에게 소모되였다. 어머니는 그 평범함 속에서 자신이 리해하고 있는 도리들과, 륜리, 준칙을 일상에 담아 아이들에게 요구하고 단속했다. 한생을 다 해서…


엄마는 잎이 무성한 오래된 나무와도 같다. 우리는 그 위에 자라는 가지며 잎들이었다. 수액을 빨아먹고 해빛을 즐기며, 행복함과 따뜻함을 누린 것이다. 지금 돌이켜보면 엄마랑 함께 했던 나날들은 그토록 아름답고 명미했었다. 꾸중을 들었던 기억마저도 애틋해진다.


이제는 그 모든 것들이 멀어져갔다… 엄마가 우리 곁을 떠난지도 어언 2년여이다. 래일은 엄마의 백세 생일이 되는 날이다. 이 기회에 우리 다 같이 엄마에 대한 기억을 되돌려 보자. 엄마에 대한 그리움과 추억을 가장 아름다운 축복이 되게 하자. 우리 가족 모두가 평안하고, 화목하게 살 수 있기를. 이것 또한 엄마가 평생 바란 바였으니까! 자손들이 행복하게 성장하는 것, 그것은 엄마가 줄곧 온 힘을 다 해 노력해 온 것들이였으니까! 엄마 생일 축하합니다… 엄마의 정신이 영원히 살아 있기를!


채복숙 편역/흑룡강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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