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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닷컴] (수필) 손주 작명 (채영춘)

조글로 zoglo.net 潮歌网 2020-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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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손주 작명


채영춘



손주가 태여났다. ‘마스크’ 비상세월에 인간신고의 고고성을 터뜨린 것이다. 코로나19의 음영이 내내 가슴 한구석에 드리웠었는데 그동안의 체증이 싹 가신 듯 속이 후련하다.



손주가 태여났다.

‘마스크’ 비상세월에 인간신고의 고고성을 터뜨린 것이다. 코로나19의 음영이 내내 가슴 한구석에 드리웠었는데 그동안의 체증이 싹 가신 듯 속이 후련하다.



언녕 할아버지 축에 들어선 동갑내기들은 젖혀놓고라도 보란 듯이 손주자랑을 해대는 후배들 성화까지 받아오던 ‘예비’ 할아버지 팔자에 드디여 종지부를 찍게 되였다. 옛날 같았으면 증조할아버지 격에나 어울릴 나이임에도 손주를 봤다고 하니 웬지 속이 활랑거린다.


나이와 상관없이 ‘락오자’라 해도 통과해야 할 인생관문은 차례로 거쳐야 하고 또 그에 따른 정감세계를 빼놓지 말고 골고루 체험해야 하는가 보다.


그런데 사람의 마음이란 참 알고도 모를 일이다. 아들딸들이 태여날 때 느껴보지 못했던 뭐라 이름할 수 없는 묘한 감정이 움실움실 살아나는 것이 아닌가? 어머님 생전에 아들 며느리 면전에서 당신의 갓난 손주를 독차지하다싶이 보듬어 안고 “내 새끼, 내 새끼” 하시며 어루쓸어주시는 모습을 보며 좀 민망했던 그때 기억이 되살아나면서 이제야 왜 손주를 당신의 ‘새끼’ 라고 하셨는지를 알 것 같았다.


며느리의 출산일을 앞두고 할아버지로 승진한다는 흥분에 붕 떠가지고 나는 할아버지가 꼭 완성해야 할 숙제로 고민하고 있었으니 바로 손주 작명(起名)이였다.


《최신옥편》, 《사해(辞海)》, 《중조사전》을 비롯한 도구도서들을 테블 우에 한아름 벌려놓고 나름대로 신사적이고 인간미가 넘치며 입에 착착 감기면서 감칠맛 나는 손주녀석의 이름을 고안하느라 골머리를 썩였다. 손자나 손녀일 경우에 대비해 여분있게 세개씩 붓글씨로 적어 손주가 출생하는 날 아침 아들내외에게 건늬였다. 내 딴에는 중대사를 완성한 그런 신성한 기분이 였다.


그런데 손주가 출생한 지 이틀이 되도록 내가 지어보낸 손주 이름에 대해 일언반구도 없더니 찬반론난으로 아직 확정짓지 못하고 있다는 애매모호한 말이 들려오는 게 아닌가? ‘족장’의 권위가 무시당하는 느낌이 살짝 안겨왔다. 점잖게 기다릴 일이 아니였다. 병원에서 산모 시중을 드느라 바쁜 아들을 당장 불러 들였다.


“자고로 손주이름은 할애비가 짓게 돼있는데 내가 손주 이름을 지었으면 그대로 따를 일이지 웬 소란들이냐?”


불쾌한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한마디 쓴소리를 내뱉었다.

“아버지, 죄송한데요. 저희들도 애 이름을 추천하면 안될가요? 물론  결정은 아버지 몫이지만.”


순종밖에 모르던 아들녀석이 작심하듯 또박또박 해석과 설득 반반이 섞인 태도를 분명하게 밝혀오는데 나는 그만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저와 은주 이름도 아버지가 짓고 할아버지가 허락하신 게 아니였던가요?) 아들은 이 말을 눈치껏 에돌려 완곡하게 나에게 들먹인 것이였다.


그랬다. 손자애가 태여날 때 할아버지는 이국땅에서 망명하는 몸이셨다. 하지만 나는 손주 출생의 희소식을 첫 사람으로 아버님께 알려드리면서 손주 이름을 부탁하는 걸 잊지 않았다. 그로부터 거의 20일이 지나 기다리던 아버님의 편지가 도착하였다. 나는 부랴부랴 편지겉봉을 뜯었다.


아버님이 당신 손주한테 하사한 이름의 관건 포인트는 빛 광(光) 자였다. 어찌보면 당신의 기구한 운명의 그림자가 더는 손주 세대에 드리우지 말기를 기원하는 절절한 바람이 담겼을지 모르겠다. 그것까지는 훌륭했다. 그런데 뒤에 날 일(日)자가 붙으니 어쩐지 썩 내키지 않았다. 너무 흔한 이름이라 솔직히 맘에 들지 않았다. 그러나 아버님이 보내오신 이름은 하나 뿐이라 선택 여지가 없었다. 그대로 따르자니 자식 일생을 함께 할 호명으로서는 아니다 싶었고 확 고치자니 아버님께 미안했다. 결국 절충 방안을 내놓았다. 할아버지가 이국땅에서 지어 보내주신 손주 이름은 애명으로 하고 관건 글자 ‘빛’을 그냥 살리는 전제하에 마지막 한 글자만 바꿔 호적에 올렸다. 물론 아버님이 귀국하신 후 상황설명을 드리고 량해를 구하였다. 설명이라기보다 설득이였다. 그래도 ‘빛’자를 살렸다는 점이 아버님의 의중을 파악한 것으로 받아들이셨는지 아버님은 흔쾌한 표정을 지으셨다. 거기다 가정내에서는 그냥 할아버지가 지어주신 대로 자식을 호명하였기에 전혀 하자가 없었다.


하지만 딸애가 태여났을 때는 상황이 달랐다. 딸애가 출생하던 날 우연히 아버님 테블 우에 놓여있는 원고지에 어지럽게  메모되여있는 글들을 보는 순간 나는 속이 덜컹하였다. 아버님은 이번에도 빛자 돌림으로 손녀이름을 궁리하시는 것 같았다. 다행히 생각이 정리되신 것 같지는 않았다. 이 틈에 꼼수를 쓰기로 맘먹었다. 그런데 아버님이 받아들이실지 걱정스러웠고 오히려 아버님의 노여움을 사서 일을 그르칠가봐 두렵기도 하였다.  그러나 기회는 이번 뿐이였다.


그날 저녁 여느때보다 저녁상을 푸짐하게 마련하여 아버님께 약주를 부어올리고 안주를 집어드리며 아버님 안색을 살폈다. 용기가 필요했던 터에 나도 아버님이 따라주시는 술을 마다하지 않고 다 받아마셨다. 분위기가 달궈지자 이때다 생각하며 나는 넌지시 그러나 분명한 뜻을 담아 아버님께 진언하였다.

“아버지, 이번에 딸애 이름을 저희도 한번 짓고 싶은데 기회를 주십쇼. 나중에 최종결정을 아버지께 부탁하고 싶은데 괜찮으시죠?”


아버님은 순간 안색이 변하시였다. 화기로운 술자리에서 손녀 작명 화제가 나오니 잠시 혼란스러워하시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인차 평온을 되찾으시고 나더러 술 한잔을 따르게 하시더니 시원하게 잔을 비우시는 것이였다.


“뭐, 그렇게 하려무나.”

아버님의 허락은 의외로 간단명료하였다. 서운한 마음이 어찌 없으셨으랴마는 그런 내색도 전혀 나타나지 않으셨다. 그리고 당장에서 내가 내놓은 당신 손녀의 이름도 ‘비준’하시였다.

“아버지, 감사합니다!”

나는 큰 짐이라도 벗어놓은 듯 홀가분한 기분으로 아버님 앞에 넙죽 엎드려 절까지 올렸다.


사실 아버님은 생전에 손주들의 호칭 대신 ‘이놈’을 더 선호하셨고 손주들도 할아버지한테서만은 ‘이놈’으로 통하는 게 더 신바람나 하였다. 우리 가정에서 손주들을 ‘이놈’으로 부를 수 있는 권한을 가진 분은 아버님밖에 없었다. ‘이놈’은 할아버지와 손주들을 격없이 이어준 특수한 호칭 동아줄인 듯했다.


아버님이 저세상으로 떠나가신 지도 어언 20여년, 어렵사리 아버님의 그 빈자리를 내가 대신 메우고 있는데 오늘 다 큰 아들이 내가 35년 전 아버님께 했던 똑같은 주문을 나한테 하고 있지 않는가?

“저희들도 애 이름을 추천하면 안될가요?”

아들은 내 허락을 받으려는 것이 아닌, 저 하늘나라에 계신 할아버지한테 나를 고소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님께서 뭐라 하실지는 너무나 분명하다.

결국 아들의 교묘한 설법에 나는 두 손을 들 수밖에 없었다. 아니, 하늘나라 아버님께서 그렇게 하라고 나를 엄하게 타이르고 있는 듯했다.


“뭐, 그렇게 하려무나.”

썩 내키지는 않았지만 나 또한 35년 전 아버님께서 하신 그 말씀을 재연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결국 아들내외가 지은 손녀이름을 ‘비준’하게 되였다. 의외로 아들내외는 내가 지은 이름의 기본골자를 살리는 선에서 손녀의 이름을 지어 이 할애비의 체신을 살리려는 시도를 보여주었다.


그날 나는 우리 가족 채팅방에서 좌상의 권한으로 아들 내외가 지은 손녀호칭을 ‘선언’하였다.


이름이란 쉽게 말해서 나를 남과 구별시키기 위한 신분부호에 불과하다. 이름으로 인간의 우렬을 가릴 수는 없다. 하지만 호칭마다에 담긴 부모나 가정 어른들의 절절한 마음과 깊은 의미는 보이지 않는 그 어떤 호신부마냥 자식의 일생을 동반하게 된다. 그 이름이 어떤 과정을 거쳐 지어졌던 글귀마다에는 나름 대로의 그 어떤 래력이나 기원이 간직되여 있다.


코로나19 ‘마스크’의 나날에 태여난 이 땅의 모든 생령과 마찬가지로 내 손주에게도 초유의 바이러스 비상사태를  이겨내고 출생한 흉흉한 세월의 내음이 배여있다. 적어도 그 같은 이미지를 담고 있다. 향후 바이러스와 장기공존하는 준엄한 시련을 이겨내고 영원히 아름다움으로 활짝 피기를 기원하는 그 같은 바람 말이다.


  그런 바람과 축복을 안고 오늘도 나는 손주 보러 아들집으로 줄달음친다.

연변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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