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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닷컴](중편) 향에는 점심때가 없다 (허강일)

조글로 潮歌网 2020-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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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편소설 

향에는 점심때가 없다


허강일


1
동산향의 김향장은 요즘 여느때 없이 바쁘다.
중점 배양대상으로 편벽한 향의 향장으로 발령 받아서부터 그는 거의 날마다 혹독한 신고식을 치러왔다.
일년 365일, 설명절을 포함해 하루도 술을 거른 날이 없었고 기본으로 하루 두번 이상 술을 마셔왔다.
인구는 3천명도 안되는 작은 향이지만 두만강 상류라 맑은 물에 산천어보다도 더 맛 좋은 돌종개랑, 버들치랑, 이면수랑 서식하고 있는 리유로 여름철에는 천렵손님이 꼬리를 물고 들어섰고 겨울에는 노루나 멧돼지고기를 먹으러 오는 령도들이 쓸어들었다.
야생동물보호법이 엄격히 실행되면서부터 마음대로 수렵못하게 하지만 향정부나 파출소에는 이런 법령이 먹히지 않는다.
수렵금지령 덕분에 오히려 더 쉽게 노루나 멧돼지를 사냥해올 수 있기 때문에 관계가 좋은 상급 령도들이 올 때면 이들은 반드시 사냥꾼을 파견해 사냥을 내보낸다. 그것도 옛날의 렵총이 아닌 자동보총을 쥐어보내면 사냥군들은 하루품만 들여도 노루나 멧돼지를 쉽게 포획해 온다. 물론 대신 사냥군들의 수렵행위를 눈감아줘야 했다.
김향장이 향에 와서 2년간 사업하면서 느낀 가장 큰 체험은 바로 관계이다. 편벽한 시골정부의  관계란 바로 손님접대다.  
농사는 농민들이 알아서 짓고 기층기관은 책임자들이 알아서 하고 있고 정부사업은  상급의 회의정신만 제대로 전달만 하면 간부들이 부서별로 움직이게 되여있다.
때문에 향장, 서기의 중점과제는 손님접대이고 잘 접대하는 것이 바로 사업을 잘하는 것이였다. 얼키고 설킨 대인관계 바다에서 오는 손님을 잘 접대해보내면 모든 것이 만사대길이였다.
젊고 력동적인 김향장은 튼튼한 신체를 믿고 열심히 사업해 나갔다.
일요일도 없고 궂은 날 마른 날 따로 없다. 
김향장이 돌이켜 보니 2년 동안 해놓은 일은 술먹은 일밖에 없다. 때로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술을 마셨다. 
향당위 장서기가 나섰으면 좋으련만 장서기는 앉은 석동을 한 오랜 서기로 인젠 더 바라볼 것도 없는 <로간부>이기에 크고 작고 두려운 게 없었다. 퇴직을 기다리고 있기에 술좌석은 될수록이면 이핑게 저핑게를 대고 피했고 웬간한 손님은 내다 보지도 않았다.
예전에는 술을 억수로 마셨다고 들었으나 지난 2년동안 함께 사업해보니 장서기는 특별한 장소 이외에는 술을 입에 거의 대지 않았다.
 <당신이 알아서 하오. 난 인젠 더 바랄것도 없으니까.>
손님이 올 때마다 장서기는 입버릇처럼 김향장에게 말했다.
 <줄을 잘 서고 접대를 잘하라고. 여기에 오는 사람들이 앞으로 누가 어떻게 출세를 할 지 누구도 모른단데. >
장서기는 자기의 경험을 비춰 항상 김향장에게 귀띰해주었다.
무뚝뚝한 자기의 성격 때문에 손님접대가 원활하지 못해 출세길이 막혔다고 생각하는 장서기였다.
정치는 선택이다.
승승장구하는 사람줄에 서면 따라서 덕을 보고 추락하는 사람줄에 서면 따라서 추락하게 되여있다. 이것은 불멸의 진리다.
김향장은 모든 손님접대를 자기에게 위탁하는 장서기가 얼마나 감사한지 몰랐다. 외부에서 보면 동산향의 모든 실권은 꼭 마치 김향장에게 있는 것 같았다.
회의차로 현성에 가면 만나는 사람마다 술을 대접하겠다고 하였고 때로는 하루 저녁에도 몇개 부서 령도들의 술대접을 받아야 했다.
그럴 때마다 김향장은 자기의 대외 인지도가 이렇듯 급상승할 수 있은것은 전적으로 장서기덕분이라고  생각하였다
<줄을 잘 설 생각 말고 모든 사람들에게 최선을 다 하오.>
김향장은 장서기의 거듭되는 귀띔을 철칙으로 생각하고 어느 누구나 가리지 않고 오신 손님들을 일심전력으로 접대하여 보냈다.
현성에서는 동산향의 김향장 인품이 좋다는 평가가 자자히 퍼졌고 인츰 당위서기로 발령 난다는둥 모 국의 국장으로 간다는둥 시장 후계자로 지목되였다는둥 등 소문이 무성했다.
김향장은 열심히 마셨고 술좌석에서 언제나 최고의 활력소로 술좌석이 잠간사이에 불처럼 타오르게 하였다.
푹 취해 쓰러졌다가도 이튿날이면 툭툭 털고 일어날 수 있는 젊음이 좋긴 좋았다.
향 재정이 바닥이 난 상황에서 손님접대는 당연히 외상이였다. 년말에 결산한다고 말은 듣기 좋게 해도 향의 재정수입으로는 술빚도 갚지 못함을 뻔히 아는 김향장이였다.
그렇다고 먹여보내지 않을 수 없다. 돈을 얻어오거나 항목을 따오자면 <손님>들에게 잘 보여야했기 때문이다.
어차피 향에서 몇해 있다가 시에 가서 국장자리나 한자리 가지는 게 목표인 것만큼 오른쪽 옆구리가 찔끔찔끔해나도 김향장은 날마다 정신없이 돌아쳤다.
어제도 오줌이 벌겋게 나갔음을 아침에야 발견했다. 수세식 변기가 아니다보니 오줌이 나갈 때 보지 않으면 노란색인지 빨간색인지 알아볼 수 없다. 특히 취해서 돌아치다 보면 언제 어데서 오줌을 누었는 지도 모르고 꼬꾸라져 잔다.
아침에 마누라가 전화를 걸어왔다.
엊저녁 꿈자리가 어수선하니 당장 현병원에 와서 검사하라는 것이였다.
<오늘 손님들이 많이 오니 방법 없소. 래일 아침 일찍 들어갈게.>
김향장의 말에 마누라는 세계 혁명을 혼자 하냐고, 그까짓 향장 자리 집어 던지고 조용히 살자고 한참 긁어댔다.
<올해 안으로 변동이 있을거니까, 힘들더라도 좀 참소.>
김향장이 인젠 몇번이고 곱씹었을 말을 반복하였다.
<당신 신체가 걱정 돼 그래요. 향진에 가지 말라는데 악을 쓰고 가더니만…>
마누라의 말이 옳았다.
단련차원에서 중용하겠다는 약속을 믿고 향에 내려와 향장직을 맡은게 큰 실수였다.
조직부의 령도가 바뀌고 현위 주요 령도가 바뀌자 모든 약속은 <공백수표>에 불과했다.  괜찮은 국에 가서 과장자리 하나 꿰차기보다도 못했다.
내려온다는 것은 떨어졌음을 의미한다.
조직부에 있을 때에는 인맥이 사통팔달하고 힘이 있었으나 향에 내려오니 절반 강산이 무너지나 다름없었다.
향에 내려 온 후에는 힘있는 인맥이 생긴게 아니라 따지고 보면 술먹는 인맥만 늘었다
마누라가 끓여주는 해장국을 한그릇 비우고 출근하던 현성생활이 그리울 때가 많았다. 그렇다고  기관에 출근하는 마누라를 떼어올 수도 없었다.
김향장은 아줌마가 챙겨주는 밥을 대충 국물에 말아먹고 찬물에 얼굴을 씻고 문을 나섰다.
피곤해서 좀 누워 쉬고 싶었지만 눕고 싶지 않았다.
후계자라는 이미지를 부각시키기 위해서는 강한 모습을 보여야 했다.
<김향장님, 안녕하십니까?>
사무실에 도착하기도전에 청사대문 옆에서 불쑥 나타난건 바로 향마을에 있는 유일한 식당 <두만강식당>업주 월매였다.
술 잘 먹고 쌍소리 잘하고 수완이 좋은 이 녀자는 몇해전에 리혼하고 혼자 살고 있다.
남자 손님들과 앉아 술잔을 들라치면 한두 사람은 꼬꾸려 뜨려야 직성이 풀려 하는 녀자다. 또한 그래야만 매상고도 올라가니까 월매 립장에서는 손 안대고 코를 푸는 셈이다.
혼자 살다보니 쉬쉬한 소문들이 많이 돌았으나 그건 다 랑설로 끝났다. 요즘은 바람을 잘 피우는 사람을 보고 능력자라고 한다. 예전처럼 호되게 몰아가지 않는다. 오히려 흠모하는 사람이 더 많다.
식당에 가서 밥 먹은 사람 치고 월매 가슴을 한번쯤 훔쳐보지 않은 사람이 없다.  금방 꺼낸 모두부처럼 하얀 젖무덤을 반쯤 드러내고 밥상에 닿일듯 말듯 고개숙이고 술을 부을 때면 젖가슴이 금방 튀여나올 것만 같았다.
술 잘 못하는 령도들을 만나면 곁에 바짝 다가앉아 걸쭉한 육담부터 시작하는데 <탁구공을 두개나 달고 한잔도 못한다는둥. 고기값을 하라는둥. 달려들면 천정에 올라 붙게 한다>는둥 하여튼 50대 초반의 녀인의 입은 거침없다.
그래도 통하지 않으면 한국의 뽀빠이의 육담노래를 뽑아대는데 술과 노래로 이중공격하는 월매 앞에서는 모두가 속수무책이였다.
마을에서 몇사람이 식당을 차렸다가 외상빚에 무너졌으나 월매만은 끄떡없다. 오히려 맘대로 외상을 먹으라고 풀어놓았다.
그만큼 자신있기 때문이였다.
<김향장님, 좀 결산해주쇼. 채소 살 돈도 없습니다.>
아침부터 돈 받으러 온 놈만큼 밉살스러운 건 없지만 월매만은 그렇지 않았다. 현에서 주요 손님들마저 향간부의 이름은 기억 못해도 월매의 이름만은 기억했기 때문이였다.
<좀 기다리오. 지금 돈이 없소.>
김향장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아우야, 식당이 문을 닫게 됐는데... >
월매가 애교스레 큰 가슴에 손을 포개고 입을 삥긋 내밀었다.
<정말 돈이 없다는데 그러오? >
김향장이 사무실로 들어가려 했다.
<오늘 점심에도 손님이 온다고 하던데 난 그럼 모릅니다. 맨 두부만 올리겠습니다.>
월매가 마치 마누라가 남편에게 말하듯이 뿜어댔다.
<이런, 정말...>
김향장은 뭐라고 말하려다 말고 다시 되물었다.
<지금까지 외상이 얼마나 되오? 향에서 먹은게? 한번 장부를 해갖고 오오.>
<이 몇해것을 합하면 6만원이 넘습니다.>
<6만원? 많지 않구만.>
김향장은 입이 딱 벌어졌으나 당당한 향장이 차마 개체호 앞에서 6만원 때문에 놀란다는 인상을 줄수 없어 알았다는듯이  고개만 끄덕였다.
 6만원이 향에서는 얼마나 큰 돈임을 잘 아는 김향장이다. 아무런 기업도 없고  재정래원이 없는 상황에서 6만원은 천문수자다. 
<내가 향장 할 때 것은 내가 전적으로 책임지겠으니까 걱정마오>
김향장은 팔을 들어 시계를 보았다.
7시 55분이였다.
8시 출근인 향정부이지만 보나마나 전화지키는 문서 이외에는 출근한 사람이 있는것 같지 않았다.
<아우야, 그럼 예전의 것은 어쩝니까?>
월매가 아양떨듯 달라 붙어 김향장의 팔을 슬쩍 건드렸다.
사무실이 아니면 팔에 매달렸을지도 모를 녀자다.
 누가 가슴에 손을 넣어 주물럭 거린다 해도 호응해 나설 녀자였다. 녀자몸이 그리웠던 김향장도 취중에 안고 싶은 충동도 느꼈었던 적이 한두번이 아니였다.
그러나 후계간부인것만큼 그것만은 절제했다.
<천천히 보기오. 내 임기내의 것도 못해주면서 어떻게 다른 걸 해주겠소.>
김향장의 말에 월매가 고개를 끄덕였다.
리치에 맞는 말이였기 때문이였다.
이때 향재정소 박소장이 사무청사를 에돌아 들어오다가 이들과 맞띄웠다.
식당마담 월매가 찾아온줄 알았으면 멀찌치 자리를 피했을 박소장이지만 김향장이 혼자인 줄 알고 다가온게 잘못이였다.
<김향장, 일찍합니다.>
그는 김향장에게 인사를 건넸다.
<아우야, 박소장, 잘 됐네. 호호호, 박소장은 언제나 딱딱 찬스 맞게 나타난다네. >
커쿨진 김향장의 몸에 가려 보이지 않았던 월매가 불쑥 나타나 김향장이 대답하기도전에 너스레를 떨었다.
 <아니, 아침부터 왜?>
<박소장이 돈을 준다기에 왔습니다. 빨리 주쇼. 김향장이 동의했습니다.>
월매가 단통 박소장의 팔에 매달렸다. 
남자들의 세계에서 굴러다닌 과부답게 선자리에서 말을 만들어냈다. 분명 동의한 적이 없는데도 말이다.
<돈? 돈이 어데 있소? 있으면 언녕 줬지.>
박소장이 김향장을 보며 난색을 지었다.
<점심에 수리국 손님들이 오는데, 점심채소를 살 돈이 없다는구만, 먼저 해결해주오.>
김향장은 말을 마치고 사무실로 들어갔다.
왜 돈이 없냐, 재정이 어느 정도냐고 물을 필요도,  묻고 싶지도 않은게 김향장의 생각이다.
분명한 건 날마다 빚이 늘고 있다는것이고 빨리 향장에서 서기로 발탁되고 현으로 들어가서 편안한 자리를 차지하는 게 목적일 뿐이였다.
박소장은 입을 쩝쩝 다셨다.
향장이 말하는데 돈이 없다고 할 순 없었다. 지난번에 김향장의 출장경비가 없다고 말했다가 혼떨어진 적이 있다.
<재정소 소장이 뭐하는 자리요. 돈이 없으면 돈을 만들어야 하는 자리가 아니오? 향장, 서기 경비마저 해결하지 못하면 이건 문제가 심각한데...>
돈을 해결 못하면 능력이 안된다는 얘기고 , 소장자리를 내놓아야 한다는 뜻도 담겨 있었다.
린근 향의 재정소 소장도 향장의 출장경비를 해결 못해 떨어졌다.
때문에 향장이 해결하라고 하라면 집의 저축통장을 털어서라도 해결해줘야 했다.
<먼저 2천원을 해결해줄게. 더 이상은 안되오>
박소장이 월매에게 말했다.
<쎄세. 박소장은 언제나 통쾌해서 좋아요. 제가 이제 한턱 쏠게요>
월매가 박소장의 팔을 슬쩍 건드리며 눈을 곱게 올리 떴다. 술친구로도 일품인 월매를 은근히 좋아했던 박소장은 앞장서 걸어갔고 월매는 박소장을 따라 소장 사무실에 들어섰다.
박소장이 지표를 꺼내 싸인할 준비를 하자 월매가 달라 붙었다.
<박소장님, 천원만 더 올려주쇼. 천원만 더...>
박소장은 어이없다는 눈길로 책상 앞에서 시부렁대는 월매를 바라보았다.
고개를 숙인탓에 더욱 무겁게 처진 가슴이 자칫하면 젖꼭지까지 보일것 같았다.
사무실에서 단독으로 만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였지만 이렇듯 야릇한 분위기를 느끼기는 처음이였다. 허리를 불시로 굽혀서 그런지 녀자의 거친 입김이 입으로 날아들었다.
박소장은 2천원을 주려던 생각을 고쳐 3천원이라고 적었다.
<시간 되면 전화 주세요. 박소장님>
월매가 풍만한 몸을 휘저으며 사무실을 나섰다.
큰 가슴에 비해 작고도 탱탱한 엉뎅이가 눈앞에서 사라지는것을 보며 박소장은 눈을 감았다.
저 풍만한 몸에 가슴을 묻고 잠을 잘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녀인의 특유의 향기가 방안에 가득 넘쳤다.



2
서기와 향장이 자리에 없으면 향정부는 전화를 받는 문서 이외에 그 어떤 사람도 찾아보기 어렵다.
별 할일 없이 전화기를 붙잡고 사처에 전화하며 소일하는 자리가 바로 문서자리다. 문서가 그래도 령도들에게 잘 보일 수 있는 것은 향간부들의 출근정황이나 출근후의 동태를 시시각각 령도들에게 회보하기 때문이다. 물론 다른 간부들은 문서가 스파이역할을 하고 있음을 모르고 령도가 없을 때면 대놓고 불만을 터뜨린다.
<개판이다>, <망태기다>, <어쩌고 말것 같지 못하다> 등등의 말들은 곧바로 향장이나 서기 귀에 날아들었고 그것은 또 대인관계로 번져져 이런 말을 한 사람들은 령도들의 눈에 나 좌천당한다.
향에는 정말 할 일이 많지만 정작 하려고 보면 할 일이 없다.
해방초기에 세사람이 했던 일들을 지금은 50여명 간부가 한다.
돈도 없고 실세도 아닌 대부분 간부들은 오전 열시만 되면 하향 나간다고 거짓말을 한후 정부청사 부근의 간부사택에서 마작을 놀거나 돌아 다니며 제 볼일을 본다.
출장을 다녀도 자체로 비용을 부담해야 하니 이게 어디 공무원인가.
어제도 사무비용을 대폭 줄인다고 박소장이 간부회의에서 말하자 다들 술렁댔다.
무장부 김간사의 1년 출장비용이 고작 120원이라고 했다. 공청단 서기도, 무장부장도 똑같았다.
그렇다고 부서기 부진장들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한심하구만, 해마다 줄어드니.>
사실 그랬다.
김간사가 무장부에 금방 들어왔던 3년전만 해도 일년 사무비용은 390원이였다.
 그런데 올라는 못 갈 망정 그냥 내려만 간다는 건 향의 재정이 바닥이 났다는 걸 의미한다.
<성신향은 간부들이 맘대로 출장 다닌다고 합데.>
김간사가 마작쪽을 던지며 말했다. 호주머니는 텅 비였어도 마작을 놀 때면 어데서 나오는지 돈이 굴러나오는게 마작군들의 현실이다.
<성신향은 재정소 소장이 대외관계가 좋아. 일년에 성과 주에 가서 돈을 얼마나 뜯어오는지 모른다오.>
사법조리가 받아쳤다.
<주는 대로 받아써라. 감사한줄 모르고>
재정소 리회계가 비웃는지 아니면 핀잔을 주는지 마작쪽을 던지며 말했다. 박소장과 자리다툼을 하다 밀려났던 그였기에 민감한 화제에서는 빠지고 싶었기 때문이였다.
<어, 다들 여기에 있구만>
문이 벌컥 열리더니 규률검사위원회 오서기가 들어섰다.
<올라오오. 한판 붙어보오>
리회계가 오서기에게 자리를 내줄 듯이 말했다.
오서기가 손사래를 쳤다.
<아니, 아니. 당신네 노오. 어이 . 김간사, 나 좀 보기오.>
<예? 예. 무슨 일입니까?>
김간사가 얼떨결에 대답하였다.
오서기가 밖으로 나갔다.
김간사는 지체할세라 인츰 오서기 따라 밖으로 나갔다.
<어이. 김간사, 내 심부름을 좀 해주오.>
<무, 무슨 일인지?>
<점심에 불시로 손님이 오는데. 천렵을 좀 조직해주오.>
오서기가 무장부 김간사에게 간청하 듯 말을 건넸다.
향에서 규률검사위원회 서기는 아무런 실권도 없는 허수아비다. 이름이 서기지 양고기뀀을 사먹을 권한도 없다.
습근평서기가 올라온후 규률검사위원회가 제기능을 작동하고 있지만 예전에는 그냥 당위 서기나 진장의 장기쪽에 불과했다.
<불시로 어떻게 천렵을 조직합니까? 물고기도 없는데>
김간사가 조용히 되물었다. 제일 말단인 그가 령도들 앞에서 보여줄 건 공손함밖에 없다.
<식당에 가서 물고기를 좀 사오오. 그리고 당신이 재간 있잖고 뭐요. 조개나 좀 뽑아주오. 그러면 되오. >
마작판을 떠나기 싫었고 외상심부름을 하기 싫었던 김간사가 한수 떳다.
<식당에서 내가 달라면 줄가요? 지난 번에도 두두벌 거리던데...>
빚재촉은 어차피 가져 간 사람에게 하는 것 만큼 김간사도 인젠 빚단련에 신물이 났다.
<일없소. 오늘 수리국 손님을 거기에서 접대하니까 함께 계산하면 된다고 말하오. 내가 김향장과 말해놓을게>
김간사는 마지못해 오서기 심부름을 나섰다. 마작에 돈을 떼우고 금방 쉬가 붙을가할 때 오서기가 왔으니 아쉽기도 하고 재수없기도 하였으나 별수 없었다.
또한 그 역시 오서기를 잠룡으로 보고 있었다. 김향장과 중층간부 당학교를 같이 다녔고 관계가 좋음을 잘 아는 김간사였다. 비록 지금은 향장과 규률검사서기로 어찌보면 라이벌 비슷한 처지에 있지만 둘의 관계는 필경 기초가 튼튼하며 이제 김향장이 당위서기로 되면 오서기가 향장 자리를 이어받게 된다는 것을 김간사도 전해들었다. 황차 점심을 공짜로 얻어먹고 규률검사위원회 분들과 한자리에 앉아 얼굴 익히는것도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였다.
<어이. 오서기 빨리 앉소. 사람이 모자라다이>
리회계가 김간사를 심부름 보내고  벽에 걸린 달력을 보며 서있는 오서기에게 말했다.
<그럼 몇판 붙어볼가? 요즘 리회계 마작이 잘 된다면서 >
오서기가 김간사 자리에 앉았다.
<되긴 개코 돼? 날마다 돼진데...>
리회계가  거의 타들어가는 담배를 마지막까지 먹어버리려는 듯 힘껏 빨고 되물었다.
<오늘 무슨 손님이 왔기에?>
<양, 현당위 규률검사위원회와 래신래방사무실에서 온다는구만, 워낙 만복향에서 식사하기로 하였는데 일정이 변해 여기에 와서 천렵하겠다나>
<그럼 인차 나가야 되잖소? 얼마 못 놀고?>
<아니, 둬시간 놀 수 있소. 자, 자, 빨리 빨리 하기오>
오서기도 담배를 피워 물고 마작쪽을 들었다.
<송민정의 일은 어떻게 됐소?>
김회계가 오서기에게 물었다.
송민정은 향정부의 골칫덩어리로 고운 녀자들만 쫓아다니다가 일전에 간통현장에서 들통나 혼쭐 빼고 있는 사람을 말한다.
온 향의 반반한 녀자들을 찾아 치적거리더니만 얼마전부터는 윗마을의 개포수마누라와 눈이 맞았다. 개포수란 개를 잡는 포수가 아니라 숱한 개를 끌고 사냥을 다니기에 붙여진 이름이였다.
개포수는 일단 사냥을 떠났다면 며칠씩 나가있는 것이 보통이다. 남편이 잡아온 산짐승을 팔아 호의호식한 개포수 마누라는 할일없이 빈둥대며 남자들의 마작판에도 주저없이 달려 들었다.
<저녁은 저희 집에 있는 멧돼지고기를 가져 올거니까, 여기서 한잔 하자요.>
개포수 마누라는 언제나 호쾌했다. 노루고기며 토끼고기며 있는 건 다 들고 나와 남자들과 어울렸다.
<그럼 술은 내가 살게...그리고 이번주 금요일에는 내가 개를 한마리 잡을테니까 그리 알라고...>
개포수마누라를 봐둔 송민정은 개포수마누라에 맞장구를 쳤다. 그리고 래일은 채소 사러 시내에 가야겠다고 은근히 내비쳤다. 뭔가 느낌이 왔던 것이다.
아니나 다를가 이튿날 뻐스에는 요염하게 차려입은 개포수마누라가 올라탔다. 절호의 찬스를 놓칠 송민정이 아니다. 시내에서 점심을 같이 먹고, 사우나를 찾아 목욕하고 족부안마까지 끝낸 이들의 갈 곳은 한곳 밖에 없었다.
사람이 거의 드나들지 않는 으슥한 려관을 찾은 이들은 광란의 파티를 벌렸다.
짐승고기를 많이 먹어서인지 개포수마누라는 야생멋이 있었다. 처음으로 신비한 체험을 한 송민정은 한달에 두세번은 꼭 개포수마누라와 붙었고 이들의 관계는 조금씩 입소문을 타기 시작하였다.
재미있는 굴에서 범이 나온다고 했던가...
송민정은 개포수에 대해 너무나도 잘 몰랐다.
개포수 앞에서는 황소같은 멧돼지도 꼼짝 못한다고 한다.
몇해전 개포수가 사냥을 갔다가 송아지만한 멧돼지를 만났다. 너무나 덩치 큰 적수 앞에서 사냥개들은 꼬리를 사타구니에 끼우고 겁에 질려 낑낑 거렸다.
물러설 수 없었다.
물러서면 개들은 물론 사람까지 모두 멧돼지밥이 되고 말것이였다.
개포수는 멧돼지를 향해 총을 뽑아들었다.
이판사판이였다.
한방에 죽이지 못할 경우 결과는 뻔했다.
개포수는 멧돼지의 대가리를 향해 총을 갈겼다.
멧돼지의 머리에서 피가 퍽하고 나는 것 같았다. 그러나 멧돼지는 넘어지기는 커녕 뒤로 몸을 움추리더니만 포효하며 달려들었다.
성난 멧돼지는 사자보다 더 무섭다.
다시 장탄 할 시간이 없었다.
개포수는 큰 나무에 기댄채 칼을 뽑아들었다.
성난 멧돼지는  뽀족한 주둥이 량쪽으로 버드러진 누런 이빨을 비수처럼 뽑아들고 개포수의 창자라도 들어낼 듯이 쏜쌀같이 달려오며 개포수 앞에서 풀쩍 반공중으로 뛰어 올랐다.
공중으로부터 내려오며 강력한 충격으로 단방에 끝내기 위해서였다.
절체절명의 순간이였다.
멧돼지가 그의 아래배를 향해 주둥이를 박는 순간 개포수는 날렵하게 나무 뒤에 몸을 숨겼다.
전광석화같은 몸놀림이였다.
수십년간 산을 타며 익힌 순간적인 본능이 빛을 발한 것이였다.
개포수가 원숭이보다 더욱 날렵게 몸을 움직일 것을 예상 못한 멧돼지는 그만 그 길고 뾰죽한 주둥이를 단단한 참나무에 들이박고 말았다.
나무잎이 우수수 떨어졌고 어른 허리만큼 굵은 참나무가 끊어질뜻 휘청이였다.
멧돼지의 비명이 산골짜기를 메웠다.
멧돼지가 고통스레 몸을 오그리는 순간 개포수는 오른손으로 칼을 단단히 잡고 오른쪽으로 돌아서며 칼을 날렸다. 칼은 굵고도 긴 털에 덮혀 거의 보이지 않는 멧돼지의 눈에 정확히 꼽혔다. 
량쪽 눈이 관통된 듯 칼날은 깊숙히 박혔다.
멧돼지는 비명을 지르며 비탈 아래로 구을렀다.
더 이상 지체하면 안된다.
멧돼지가 상황판단을 끝내고 다시 달려드는 날에는 살아 남을 수 없다.
개포수는 비장한 모습으로 다시 장탄하였다.
주인의 용기에 고무된 개들이 미친듯이 달려들며 멧돼지를 물어뜯었다. 그러나 등허리에 풀이 자랄만큼  두터워진 멧돼지가죽을 물어 뜯기에는 역부족이였다. 멧돼지는 마치 개들의 진공을 비웃 듯이 일어섰다. 한쪽 눈에 꼽힌 비수는 마치 송아지 뿔과도 같았다. 피가 줄줄 흘러내렸고 멧돼지는 고통스레 몸부림 쳤고 방향감각을 찾지 못해 휘청이였다.
멧돼지는 성한 눈을 껌벅이며 개포수를 향해 천천히 걸어올라왔다.
다시 진공하려는 것이다.
순간 개들이 으르렁 거리며 멧돼지를 둘러 쌌다.
<가만! 멈춰라!>
 개포수가 절규하듯 개들을 향해 큰 소리를 쳤다.
성난 멧돼지에게 달려들면 개 몇마리는 분명 상하거나 죽게 되기 때문이였다.
개포수는 이를 악물고 다시 총을 꼬나들었다.
주인의 의도를 알아챈 개들이 물러섰다.
비틀거리던 멧돼지가 겨우 평형을 잡고 돌진하려고 몸을 추스리는 순간 개포수는 통한의 한방을 날렸다.
정통이였다.
거대한 멧돼지는 맥없이 물앉으며 헐떡이였다. 
지체할세라 개포수는 무릎에서 작은 비수를 꺼내들었다. 사냥군이 총에 맞은 짐승을 향해 칼을 뽑을 때는 개들에게 보이기 위해서다.  개들과 함께 죽기살기로 싸우겠다는 주인의 의도이고 용기인 것이다.
그러면 개들은 더욱 죽기살기로 싸운다.
기회를 기다리던 사냥개들이 벌떼처럼 달려들었다.
개포수가 멧돼지의 가슴에 칼을 박으려는 순간 개 한마리가 단통 달려들어 멧돼지 불알을 물었다.
숨통을 물린 멧돼지는 비명만 지를뿐 꼼짝 못하고 사지를 부르르 떨었다. 개포수는 또다시 멧돼지의 가슴에 칼을 깊숙히 꼽았다....황소만한 멧돼지가 피속에 쓰러졌다...
...  ...
송민정은 사실 개포수의 전설같은 얘기만 들었지 지금껏 마주앉아본 적도 말을 몇마디 나눠본 적도 없다. 향에서 사냥물이 필요할 때면 다른 사람을 내세워 심부름만 시켰을 뿐이다. 사실 개포수를 우직한 곰 정도로 치부해왔던 것이다.
<곰같은 자식에게 어쩌면 자기처럼 이쁜 여자가 생겼지?>
송민정이 개포수마누라와 마주앉아 지껄였다.
<오십을 다 바라보는데 뭐 이쁘다고...>
개포수 마누라가 이쁘다는 소리에 교태를 부렸다. 곰처럼 거칠게 달려드는 남편에 비해 사탕처럼 녹아드는 송민정은 정말로 극락세계였다. 하루에도 몇번 까무러쳤는지 모른다.
<자기 남편은 곰처럼 기운이 좋으니까 밤일도 잘하겠지. ?..ㅎㅎㅎ>
송민정이 너스레를 떨었다.
<잘하긴, 뭘 잘한다고 그래요? 물건을 들라면 잘 들지만 그 일은 잘 못해요. 토끼처럼 몇번 들썩이면 끝난다니까...>
<그래? 희한하네. 그럼 내가 오늘 한시간 해줄가? 아니면 두시간 해줄가?>
송민정이 웃옷을 벗었다.
<몰라, 나 잘래>
개포수마누라가 아닌보살하며 가마목에 곱게 펴놓은 첫날이불 속에 기어들었다. 불을 가득 지폈는지라 가마목은 후끈후끈했다. 운우지정 나누기에는 최고였다.
송민정도 옷을 벗고 기어들었다.
<우리 남편은 오늘 돌아 안 와요...>
송민정이 들어가자 개포수 마누라가 찰싹 달라 붙었다.
송민정과 개포수 마누라는 지체할세라 물고 빨고 지랄발광하다가 본격적인 전쟁을 시작했다. 하늘땅이 무너지고 우뢰소리 울리고 파도가 뒤덮히는 듯한 광란의 밤이 지속되였다.
<여보, 문 열어.>
아뿔사, 시내 잔치집에 갔던 개포수가 밤중에 돌아왔다.
술에 잔뜩 취한 개포수는 마누라가 문을 열어주지 않자 무슨 느낌이 들었던지 문을 부시고 들어왔다.
<이 개 쌍년들이...>
눈 앞의 광경에 미쳐 버린 개포수는 이불 속에서 송민정의 머리채를 끄집어냈다.
잘 튀를 한 흰돼지 같은 송민정의 알몸이 방바닥에 뒹굴었다.
개포수는 마치 발악하는 짐승을 때려죽이 듯이 송민정을 두들겨 팼다.
성차지 않은 개포수가 창턱에 있는 사냥칼을 뽑으려는 찰나 개포수의 마누라는 벌거벗은채 벌떡 일어나 남편을 다리를 안고 남편을 넘어뜨렸다.  
송민정은 그 틈을 타 문을 차고 나갔다.
그런데 문제는 그때 일어났다.
개포수를 따라 다니며 전문적으로 짐승의 불알쪽만 물어 뜯었던 사냥개가 앞을 막았던것이다.
벌거벗고 달려나오는 송민정을 도적인줄로 알았던 개는 덮석 달려들며 거시기를 물려 하였다. 송민정은 본능적으로 두 손으로 거시기를 꽉 싸안고 허리를 굽혔다. 개의 큰 입이 송민정의 코를 물었다.
송민정은 비명을 지르며 땅에서 구을렀다. 그 와중에도 송민정은 개에게 물려 떨어질가봐 사타구니는 두손으로 꼭 틀어쥐였다.
사람인지라 차마 물지 못하고 사냥개는 송민정이 달아나지 못하게 으르렁 거리며 길을 막았다.
<저 개새끼 불알을 까버리겠다!>
개포수가 날뛰였다.
<사람 살리오!>
개포수의 마누라가 소리쳤다.
이웃집 로인내외가 달려 나왔다.
마침 마을에 하향 내려왔던 파출소 경찰까지 속옷차림으로 달려나왔다.
가령 이웃집의 로인과 경찰이 달려나오지 않았더면  송민정의 거시기는 그날 개포수의 칼에 잘려나거나 사냥개에게 뜯기우고 말았을 것이다.
... ...
사법조리에게서 송민정과 개포수마누라의 불륜현장을 생중계를 보듯 전해듣던 리회계가 시부렁 거렸다.
<여자를 잘 꼬시는것도 재간이야. 토끼처럼 제굴만 파지 말고. 재간있으면 콱 해라. 늙어서 후회하지 말고>
오서기가 말했다.
<내가 여기에 오기전에도 송민정은 전과가 있었더구만. >
<그렇지. 팔방미인이지. 아마 송민정과 웃음을 나눈 여자들은 아래도리도 다 교환했을걸...>
김회계가 받아쳤다.
<그래 지금 송민정은 어떤 상황이요?>
오서기가 물었다.
<어제 가보니 맞아서 죽탕이 됐더구만. 왜, 규률검사서기인 당신은 아니 가봤소?>
김회계가 오서기에게 물었다.
<그런데를 왜 가보겠소? 메달을 달아주려고 가겠소?ㅎㅎㅎ >
오서기가 웃었다. 사실 향에서는 사법조리와 문서를 파견해 사건의 경위를 조사하였을 뿐이다.
<야, 정말 1분만 늦었더도 불쪽을 잃을뻔 했다오. 아마 보름정도 입원해야 할걸>
사법조리가 말했다.
<ㅎㅎㅎ. 한번 해보고, 평생 못 할뻔했구만>
김회계가 맞장구 쳤다.
사실을 조사하면서 얻어 들은게 많은 사법조리다. 특히 바람피운 부부들을 조해 시키면서 얻어 들은 이야기를 할때면 별의별 희한한 얘기가 다 나온다. 누가 먼저 옷을 벗고 누가 먼저 시작했고 동작은 어떻게 했고 무슨 말을 어떻게 했는지
<당신네는 재밋겠소. 우린 수판알만 튕기는데. 당신네는 그런 얘기랑 상세히 다 듣고...>
김회계가 사법조리를 놀리듯 말했다.
<그게 아니고, 정작 잡혀 오면 양, 변명하기 위해서인지 서로 어찌나 상세히 말하는지 어떨때는 얼굴이 뜨거워질때가 있소. 심지어  너 먼저 했다, 내먼저 했다고 싸울때도 있소.>
사법조리의 말에 다들 웃음보를 터뜨렸다.
<자기것도 아닌 남의것과 난처해서 어떻게 할가?>
향정부에 출근한지 얼마 안되는 농기관리소의 장동무가 끼어들었다.
<난처하긴, 가만 가만 따먹는게 얼마나 맛있는데...참외도 그렇고, 음식도 그렇고 다 그래>
<말을 그만 하고, 자, 맞았소>
리회계가 김회계가 던진 마작쪽을 보며 판을 번졌다.
8원짜리였다.
<제길, 괜히 남의 바람 쓴 얘기를 꺼내놓고 맞았네>
김회계가 두드벌 거렸다.
 마작군 네사람이 모두 담배를 꼬나물자 담배연기가 동네 굴뚝처럼 여기저기에서 피워 올랐다.
시계가 11시를 알리자 부엌에서 점심 준비를 하던 특산조리 안해가 집을 나섰다.
점심에 먹을 두부 사러 가는것이다.
<두부를 재정소 앞으로 걸어 놓으십시오>
리회계가 특산조리 아주머니에게 소리쳤다.
<아니, 두부가 얼마 된다고. 제가 살게요>
고지식하기로 유명한 특산조리 아줌마가 대답하였다.
<거기에 외상이 적지않습니다. 어차피 며칠후에 제가 결산하러 가니까...>
특산조리 아주머니가 대답없이 그대로 나갔다.
<저레 술까지 사오라고 그래라, 어차피 외상인데. 우리도 먹자, 령도들만 먹겠니...>
리회계가 김회계에게 심부름을 시켰다.
<알았소. 내가 갔다 올게>
 담배연기는 더욱 짙게 마작판을 가마 덮개처럼 덮어 버렸다.
 
3
전화벨이 울렸다.
김향장이 전화를 받고 보니 당위 장서기였다.
<김향장? 나요. 주정부 양부주장이 변강 시찰로 여기를 지난다고 하던데. 가능하게 여기에서 식사하게 될거요. 내가 정부 반공실에 부탁해 제발 여기에서 식사하게 해달라고 말했소.>
<아, 네. 잘했습니다. 언제 오신답니까?>
높은 손님만큼 반가운게 없다.
관계망이 그만큼 넓어지고 새로운 길이 생길수 있기 때문이다. 하다못해 술잔만 통쾌히 들거나 뜻깊은 유머를 한마다 던질수 있는 기회가 생겨도 깊은 인상을 남길수 있다. 황차 양부주장은 술을 잘 마시기로 소문 났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재정국의 박국장도 당신이 책임지고 접대해주오.  주장이 오신다는데 내가 취하면 안되니까>
<알았습니다.>
장서기의 말에 김향장은 인츰 흔쾌히 대답하였다.
그러면서도 속으로는 <넌 취하면 안되고 나는 취해도 되냐>고 말하고 싶었다.
이런 생각이 들기는 처음이였다.
오늘 하루 일정을 생각하니 억이 막혔다.
주요한 부서에서만 두곳에서 온다.
하나는 재정국, 하나는 수리국...모두 향의 재정과 직접 련관된 중요 부문이다. 그래서 재정국은 장서기가 접대하고 수리국은 김향장이 접대하기로 하였는데 인젠 김향장더러 재정국의 박국장까지 책임지고 접대하란다.
죽어 삐쳐야 될 판국이다.
여느때와 달리 몸이 처져 힘들었으나 김향장은  순순히 대답하였다.
<네. 제가 잘 접대할게요. 수리국의 최국장을 먼저 접대한후 제가 가서 마무리하겠습니다>
<그러오. 내가 그사이 먼저 박국장과 몇잔 함께 나눌게. 그다음 당신이 책임져주오.>
<네. 박국장이 지금도 술을 잘 합니까?>
<인젠 술을 많이 못하오. 당신 주량은 내가 잘 아니까,   걱정마오.>
장서기의 말을 들은 김향장은 가만히 계산해 보았다. 한좌석에서 다섯잔씩 마셔도 열잔을 마셔야 될 판국이였다.
두 좌석을 돌면서 손님을 접대하려면 어느 한좌석은 속전속결해야 한다.
큰 잔으로 한두잔 권하는것이 최고 방책이다.
큰 잔으로 한잔만 건배제의를 하면 다들 손을 든다.
그때 물러나면 체면도 서고 인상도 남음을 향에서 손님 접대하며 익혔다.
<아까 재정소 박소장과 물어보니 모두 두만강식당에 안배했다더구만, 오고 가기가 편하게 잘 되였소. 그럼 부탁하오>
장서기가 신신 당부했다.
<시름 놓으십시오.제가 화끈하게 접대할겁니다.>
 오른쪽 옆구리가 또다시 띠끔띠끔 해났다.
어쩌면 통증이 더 심해진듯하다.
 김향장은 웅담분을 넣은 캡슐을 꺼냈다.
 마누라가 보내온것이였다. 마누라는 간이 썩 건강하지 못한 남편을 위해 비싸게 사왔다고 했다.
그는 웅담분을 넣은 캡술을 두개 꺼내 입에 넣었다.
술을 마시며 보니 숙취에는 웅담분이 최고였다.
핸드폰이 울렸다.
규률검사위원회 오서기였다.
<김향장님.>
<양, 오서기, 무슨 일이요?>
김향장이 살뜰히 물었다.
<김향장님. 현규률검사위원회 래신래방에서 불시로 오신답니다 .>
<그래? 그럼 점심을 안배해야지,그런데 왜서 인제야 말하오?>
김향장이 되물었다.
<워낙 만복향에서 점심을 먹기로 하였는데. 두만강 물고기가 생각나 여기로 온답니다>
<하하하. 그놈 물고기, 물고기 정말 사람을 죽이오…  그래 누구랑 온답데?>
<래신래방 사무실의 렴주임이 부주임까지 세명 모시고 온답니다.>
<알았소. 오늘 재정국, 수리국 그리고 부주장까지 온다고 하니까 아마 나와 장서기는 술을 권하지 못할수도 있소. 당신이 알아서 안배하오>
< 네, 알았습니다.>
<그리고 일이 있으면 수시로 련락하오.>
<네. 알았습니다.>
오서기가 전화를 끊자 김향장은 잠시 눈을 감았다.
오서기와 김향장은 현 당학교 중층간부 배양반의 동기다. 당시 오서기는 동산향의 파견을 받았고 김향장은 조직부의 파견을 받았다.
동산향의 원래 향장이 조동해가자 모든 사람들은 오서기가 향장이 될것이다고 하였다. 사실 서렬을 따져보나 경력을 따져보나 오서기가 최적임자였다.
그러나 인사라는건 두껑이 열리기전엔 누구도 모른다.
김향장이 조직부에서 락하산을 타고 향장으로 임명되였던것이다. 응당 축하해줘야 할 처지지만 오서기는 사실 그 충격으로 몇달간 출근도 바로 하지 않았다.
향의 규률검사 서기는 일축이 나지 않는 부서다. 또한 하고 싶어도 할수 없는 부서이기도 하다. 동급당위 령도를 받는 상황에서 할 일은 아무것도 없다.
규률검사서기로 갓 부임되였을때만 해도 오서기는 간부들의 기강을 바로 잡으려고 애를 썼다.
먼저 족친것이 바로 향의 건방조리였다. 농촌주택개조를 하며 부정축재를 많이 했다는 신고가 들어왔기 때문이였다.
<당신의 정도면 간부직에서 면직 당할수도 있습니다. 로실하게 교대하고, 조직의 처리를 기다리십시오>
오서기는 건방조리를 호되게 닦아세웠다. 그리고는 현 규률검사위원회에 보고 하였다.
그런데 장서기가 그날 오후로 그를 찾았다.
<참, 무슨 사업을 그렇게 하오? >
<무슨 말인지?>
오서기는 오리무중이였다.
<건방조리 안건을 현위에 반영했다면서?>
<네. 그랬습니다>
<아니, 그런 일을 왜서 향당위의 토론도 없이 그렇게 하오?>
장서기의 얼굴이 굳어 있었다.
<아니, 지난번에 말했잖습니까? 신고가 왔다고...>
<그래도 그렇지. 현위에 회보할 때는 나하고 말해야지...참, 일을 왜 두서없이 하오?>
장서기가 핀잔주듯 한마디 던지고는 나갔다.
오서기는 그럼 당신이 다 하십시오. 라고 말할가 말가 하다가 목구멍까지 나온 말을 겨우 삼켰다.
부정부패를 한 사람을 처벌하려는데 뭐가 잘못 되였단 말인가...
어이없는 것은 건방조리는 비단 처벌을 받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장서기를 업고 오히려 더욱 으시댔다.
또한 현에서 령도들이 올 때면 건방조리는 언제나 자기 집에 개나 양을 잡아 접대하면서 오히려 규률검사서기인  자기보다 더 큰 실세로 둔갑하였다.
개떡 같았다.
장서기가 건방조리를 맘대로 다루지 못하는 리유도 어느 정도 알 것 같았다.
어제는 또 석부향장이 자기를 불러 간청했다.
향의 계획생육조리를 좀 봐달라는 것이였다.
당위회의에서 향의 계획생육조리가 초생아벌금돈을 람용하고 탐오했다는 검거가 올라왔기에 조사에 착수해야 겠다고 말한 것이 발설된 것이다.
향에서 부향장은 당위 위원에 못 속한다. 그렇다면 누군가 말했다.
어제 당위 회의를 끝내고 출입문을 나설때 건방조리가 말하던 말이 생각났다.
<무슨 회의를 했니?>
건방조리가 조직위원에게 물었다.
조직위원이 아무것도 아니라며 말을 아끼자 건방조리가 히물거리며 내 뱉었다.
<말하지 말라. 말을 안해도 래일 아침이면 우리 마누라는 다 안다>
억이 막혔다.
집에 가서 마누라에게 다 입을 열고 다닌다는 얘기다.
사실 아침이면 할일없이 모여든 령도들의 마누라들은 서로 얻어들은 정보를 교환하고 있다는 말을 진작 전해들은 적 있다.
<오서기, 좀 알아서 눈 감아 주시고...>
석부향장은  오서기가 언제부터 욕심냈던 가죽가방을 앞에 내밀었다. 핸드폰도 넣을 수 있고 돈가방은 물론 노트도 넣을 수 있게 만든 다기능가방으로 로임족들이 사기에는 너무나 값비싼 가방이였다. 이런 가방을 석부향장이 계획생육조리를 대신해 전해준다는 것은 계획생육조리와 석부향장의 관계가 이상하다는 소문이 사실임을 알려주는 순간이기도 하였다.
같은 정부청사에서 공작하는 사이에 너무 모른다고 할 수는 없었다.
<왜서 남들의 뒤를 파려고 그래요? 돈이 더 생기나요? 밥이 더 생기나요? 두루두루해서 제노릇이나 할 궁릴 하세요.>
마누라의 바가지 긁는 소리가 귀전에 맴돌았다.
오서기는 가방을 덥석 받았고 별도로 양복까지 선물 받았다.
물론 계획생육의 비리를 덮어주는 대가로 말이다.
당위서기는 물론, 향장, 부향장의 얼굴까지 봐주다보니 규률검사 서기 신분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도 없었다.
오서기는 지난 2년간 그저 누이좋고 매부 좋은 날들을 보냈고 허술한 농촌간부들에게 관련된 안건은 접수하고 향간부들이나 기관에 관련된 검거신은 모두 덮어버렸다.
오서기가 향의 실세가 아닌 한직에 있으면서도 고마웠던 것은 바로 김향장이였다. 조직부 출신 답게 문제에 대한 판단과 분석이 정확하였다. 그는 오서기가 차세대 유망주로 점찍고 언제 어데서나 오서기의 체면을 세우기 위해 왼심을 썼다.
김향장이 향의 모든 공석에서 <오서기는 전도유망하고 우리 향의 보배다>고 말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이런 김향장의 마음을 알고 있기에 오서기는 될수록이면 김향장에게 부담을 끼치려 하지 않았고 안온하게 시간을 보내는 것으로 때를 기다렸다
김향장은 쏘파에 앉은 온몸이 가라앉는것만 같은 착각이 들었다.
오늘따라 유독 피곤한게 이상할 정도였다.
래신래방사무실의 렴주임한테 안 갈수도 있다고 했지만 그건 도리가 아니라고 그는 생각했다.  오서기의 체면도 세워줘야 했고 래신래방사무실의 렴주임의 체면을 위해서라도  꼭 가서 한잔 부어야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재정국, 수리국  손님까지 접대할 일을 생각하니 아득해 났다.
별수없었다.
하루 사업의 시작과 끝이 술이 아니던가
그는 길게 호흡하였다가 힘껏 내뿜었다.
엊저녁 술독이 조금이나마 빠지겠는가 해서였다.
 
 
4
한없이 한가하다가도 바쁘다 하면 일이 파도처럼 몰려드는게 세상사다. 손님도 그렇고 일감도 그렇고 술도 그렇다.
김향장에게 오늘은 술복이 터진 날이다.
향장으로 처음 발령 왔을 때만 하여도 손님이 무섭지 않던 그였고 오히려 손님이 없어 술자리가 없으면 향정부의 독신들을 불러 술자리를 만들었던 그였다.
그런데 요즘은 아니다.
소화도 잘 안되고 컨디션이 날에 날마다 떨어지는 것이 알렸다. 마누라가 걱정하는게 도리가 없는게 아니였다.
주말 부부로서  안해들은 남편의 컨디션을 금방  알아본다.
안해는 남편의 얼굴색이 몹시 안좋다고 했다.
그러더니 용한 교수를 찾아 진찰권을 받아놓았으니 당장 들어오라고 하였다.
오늘 따라 술장소를 피하고 싶다.
그러나 어느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게 없었다.
 점심식사시간이래봤자 길어야 한두시간이다.  한두시간 사이에 한상도 아닌 3-4상을 돈다는 건 무리다. 그것도 주인의 이름으로 돈 다는 건 , 웬만한 강철체력이 아니면 할 수없다.
 
향정부 문을 열고 개포수가 들어섰다.
송민정을 폭행한 죄로 구류소에 일주일간 있다 나온 것이다.
비록 송민정이 유부녀를 범한 건 사실이지만 그것은 통간일 뿐 강간이 아니기에 폭행죄를 묻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였다. 송민정은 그날 비록 불알 두쪽은 그대로 보존할 수 있었지만 대신 앞이 두대를 잃었고 갈비뼈가 석대 부러졌다. 앞이발은 개에게 걸려 넘어지며 세멘트에 이발을 쫗았다고 한다.
사실 파출소에서도 개포수를 구류하고 싶지 않았지만 개포수가 너무 너무 거칠게 나오는 바람에 손을 본 것이다. 개포수는 조사를 내려온 파출소 민경과도 충돌했고 향정부에 불을 질러놓겠다고 야단치기까지 했다.
 그래서 훈계하는 의미에서 개포수를 15일 구류 시켰는데 , 어찌된 영문인지 일주일도 채 안돼 풀려나왔다.
<송민정인지 미친놈인지, 당장 나오라고 해. 그놈의 불알 두쪽을 원래 빼버려야 하는데>
향정부 문서 앞에서 호통쳤다.
문서와 먼 친척벌이 되기에 허물없이 떠들 수 있었다.
<언제 나왔습니까? >
문서가 개포수에게 구류소에서 언제 나왔냐고 물었다.
<어제 나왔지. 나를 구류 시키려고? 흥, 판결해봐라. 내가 감옥에 가는가...>
개포수가 으시댔다.
<남의 마누라를 타고 앉은 놈은 병원에서 치료받고, 피해를 본 나는 구류소에 가고...이게 공산당정책인가?>
개포수가 코를 힝 풀어버리며 툴툴 댔다.
<너무 세게 두드려 팼으니까 그렇지요. 뭐, 칼로 무엇을 까겠다고까지 야단쳤다면서요.>
문서가 히물히물 웃으며 말을 받았다.
<제길, 개같은 놈이 내 마누라를 올라 탄 걸 보았는데, 그래, 가만 있을 사람이 어데 있어? 그럼 그걸 잘했다고 칭찬하고 종이를 가져다 잘 닦으라고 말을 해야 되는가?>
개포수의 언행이 점점 거칠어졌다.
<똑똑똑>
노크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오십시오>
문서가 소리쳤다.
문이 삐쭉 열리더니 마을의 구제대상인 상복이 들어섰다. 상복이란 팔부를 면치 못한 사람으로 달마다 민정에서 주는 쌀이나 돈에 의거해 산다. 처음에는 감사하게 생각하던것이 인젠 민정에서 주는 돈에 습관된 나머지 민정에 내려오는 국가 보조금은 모두 자기 돈이라고 말할 정도이다.
<송민정이 어데 갔습니까?>
상복이 물었다. 아마 송민정이 맞아 터진 것을 잘 모르나 본다.
<출장 나갔습니다. 한달 후에나 올 겁니다>
문서가 에둘러댔다.
<개새끼들이, 전체로 우리 돈을 가지고 맘대로 쓴단데...>
상복이가 두덜댔다.
<우리 돈이라니?>
문서가 물었다.
<민정에 내려오는 돈은 전부 우리 돈이란 말입니다. 우리에게 내려 오는 돈을 그 새끼들이 다 잡아쓴단데...와, 더러워서..우리 돈이 없으면 향정부가 어떻게 돌아가게.>
상복이가 의기양양해서 량허리에 두팔을 올리고 코웃음까지 쳐댔다.
<담배나 한대 피우고 가십시오. 인츰 회의를 하니, 알겠습니까?>
문서가 담배를 한대 꺼내 상복에게 건네주었다.
<민정이 오면 말해 주십시오. 돈을 제떼에 아니주면 내 민정국에 가서 신고하겠다더라고. 정부 아새끼들이 정말 개판이란데..>
상복이가 나가며 욕질했다.
<잠간, 지금 뭐라고 했습니까? 향정부 아새끼들이?>
문서가 눈을 부릅뜨며 상복이를 불러세웠다.
<아, 아니, 당신은 아니고...>
상복이가 겁에 질려 눈을 내리  깔더니 물에 빠진 개처럼  슬며시 빠져 나갔다.
<세상에, 바보들에게 보조금을 자꾸 주니까, 지금 착각하고 있습니다. 머저리는 도와주지 말아야 한단데>
문서가 개포수에게 뜨거운 물을 부어올렸다.
<뜨거운 물이나 한잔 마십시오>
<감사하오.>
개포수가 물을 받아들고 말했다.
<그 개새끼를 내가 이제 어떻게 하는가 두고 보오.>
<자꾸 그러지 말고, 조용히 마무리하십시오. 떠들어 서로 좋을 게 뭐가 있습니까?>
문서가 타일렀다.
<이제 내가 그 새끼를 죽이고, 그집 마누라를 강간하고. 불질러 버리겠소>
<무슨 말을 이렇게 합니까?>
문서가 엄숙한 얼굴로 말했다.
<여기는 정부기관입니다.>
<정부 기관은 뭐 개코 정부기관이야? 내 입이 터지면 편하게 살놈 한놈도 없어. 난 말이야, 우리 집에 와서 산짐승 고기를 먹는 사람들로부터 많은 얘길 들었어. 당신이 모르는 비밀도 난 알아, 별의별 손님이 다 왔다 갔으니까, 공안국에서도 왔다갔고 법원, 검찰원에서도 왔다갔고...>
개포수가 득의양양해 말했다.
<난 가만 안둬둘 거야. 나를 잡아 간 놈부터 시작해. 서기, 진장을 포함해 다 >
문서가 참다 못해 말했다.
<정 이러면 파출소를 부를 겁니다. 조용히 말할 때 말을 들으십시오>
파출소를 부르겠다는 말에 개포수가 눌러앉았다.
며칠간 구류당해보니 구류소는 사람 살 곳이 아니였다. 매도 많이 맞았다. 경찰들이 몰려들어 때리는 것이 장난이 아니였다.  한둘이 달려들면 하다 못해 물어뜯어도 이길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그게 아니였다. 전기곤봉이 날아들고 온수도관에 수쇠를 고정하고 이리떼처럼 달려들어 때리는 데는 방법이 없었다.
총에 맞은 멧돼지에게 사냥개들이 달려들던 광경이 떠올랐다.
멧돼지가 숨이 끊어져서야 개들이 물어뜯지 않은 것처럼 개포수가 쭉 기절해서야 폭행이 멈춰졌다.
아마도 죽을가봐 겁났는가 본다.
<책임자를 불러 오라, 자백할 게 있다>
이튿날 개포수는 또 다시 취조를 시작하려는 경찰들에게 말했다.
한줄에 오각별 세개짜리인  책임자가 왔다.
<무슨 일이요?>
면목이 있었다.
<당신도 나를 알지? 개포수...>
<개포수? ...>
책임자가 어리둥절해 했다.
<동산향의 개포수... 정말 모르겠는가? 지난 음력설에도 멧돼지 두마리와 노루 세마리를 가져간 걸로 아는데..>
개포수가 콩알이 떨어지 듯 또렷하게 천천히 말했다.
<아, 아, 알만합니다. 알만합니다. 돼, 됐습니다>
그제야 개포수를 알아 본 경찰은 급히 나가며 수하 경찰에게 특별우대를 주문했고 개포수는 보름이 아닌 일주일만에 풀려나올 수 있었다. 국가급 보호동물을 잡으면 안된다는 것을 잘 알기에  사냥을 주문 받을 때마다 이름과 신분을 상세하게 기록해놓은 덕을 본 것이다.
더 때리면 다 불어버릴 생각이였다.
구류소에서 써먹었던 방법을 개포수는 지금 향정부에 와서 써먹으려는 것이다.
<향장이던 서기던 나오라고 하오>
개포수는 팔자다리를 꼬고 앉아 호령했다.
<지금 주에서 손님들이 오셔서 접대중인데...>
<그럼 잘 됐구만, 그리로 가볼가...>
개포수가 일어났다.
<무슨 일인데...그 쪽으로 가면 큰 일 납니다.>
문서의 눈이 휘둥그래 졌다.
<큰 일 날게 있소? 주의 간부들도 내가 잡은 멧돼지고기를 먹었는데...난 말이야, 오늘 내가 잡은 짐승고기값을 받으러 왔단 말이요. 장서기랑, 김향장이랑 아마 내가 잡은 산짐승을 한 자동차  먹었을 걸,>
개포수가 너덜너덜한 책을 꺼내들었다.
<다 기록돼 있어. ㅎㅎㅎ 나만 당할 수 없지. 외상돈을 달라고,  송민정이 새끼 때문에 잔뜩 얻어맞아서 몸보신 하려고 그래,..몸보신해야 나도 그집 마누라를 넘보지...안그래?ㅎㅎㅎ.>
개포수가 음흉하게 웃었다.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문서가 개포수의 귀에 대고 소곤소곤 댔다.
개포수 같은 사람을 많이 접대해본 문서인지라 문서의 입김은 인츰 효력을 보았다.
개포수의 얼굴이 피여나기 시작하였다.
 
두만강식당이다.
하얀 김이 자오록히 솟아오르는 신선로를 사이두고 김향장은 수리국의 최국장 일행과 마주 앉았다.
물론 아주 강건하고 좋은 컨디션으로 말이다.
김향장에게는 이 장소가 오늘의 첫 전투다.
<채소도 비슷하게 올랐는데. 시작할가요.>
김향장이 일어섰다.
<먼저 수리국의 최국장께서 바쁘신 와중에도 저의 향을 찾아주신 데 대해 충심으로 되는 감사를 드립니다. 이는 저의 향에 대한 관심과 지지와 갈라놓을 수 없습니다. 앞으로도 자주 찾아주신다면 정말 열심히 잘 접대하겠습니다>
김향장이 향정부에서 익힌 공식적인 인사말을  소학생이 랑독하듯 또렷또렷하게 내 뱉았다.
<앉으라이. 앉아서 하란데…오랜 친구끼리 왜 이리 체면을 차리오. 어색하다니까.>
수리국의 최국장이 김향장의 옷깃을 잡아 당겼다.
<그럼 앉겠습니다.>
김향장이 자리에 앉았다.
<조직부에 있을 때 부터 최국장은 저와 아주 깊은 인연을 갖고 있었고, 항상 도움을 받았습니다. 이번에도 큰 공사를 저의 향에 주어 감사합니다.  술은 물로 되였습니다. 물은 또 수리국에서 관리하고. 그러니 수리국에서 오신것만큼 오늘 우리는  술을 물처럼 마셔야 합니다.>
<야, 멋있소, 아주 멋진 말이구만, 하하하. 당신은 정말 재간둥이요.>
최국장이 말했다.
<우리 여기 물은 시내 수도물처럼 소독내 나는 물이 아니라 순수한 샘물이어서 넘기기도 아주 좋습니다. 그러니까 들면 건배하고 건배하면 나머지가 없어야 하고 나머지가 있으면 벌주가 따릅니다.>
김향장이 맥주고뿌에  술잔을 가득 부어들었다. 물론 손님들에게도 똑 같이 부어올렸다.
<건배하는거요? 김향장?>
최국장이 놀란 듯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잔을 남기고 물만 마셔주십시오>
<하하하. 와! 이 큰잔에?>
최국장이 난색을 지었다.
그렇지만 반가와 하는 기색이 력력했다.
자기의 몸을 내번지고 접대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자기에 대한 존경이고 당사인 심목중의 자기의 위치임을 잘 아는 최국장이였다.
<저를 따라 마셔 주신다면 가문의 영광으로 생각하겠습니다.>
김향장이 안주도 먹지 않고 두모금에 다 마셔버렸다.
독한 소주가 목구멍을 따라 흘러내려 갔다.
울대 뼈가 꿀꺽 하는 소리가 들렸다.
<남자요. 김향장이 진짜 사나이란데…>
최국장이 김향장을 따라 술잔을 들었다.
<자, 자, 우리도 한잔 비워야지. 김향장이 성의를 봐서라도>
최국장이 입을 벌려 한모금에 털어넣었다.
 국장이 마시자 수리국에서 온 일행들은 모두 두말없이 따라 마셨다.
술이 통째로 입안에 날아들어가자 술상 분위기는 금시 무르익었다.
안주는 짚지 않고 술잔을 권하기에 바빴다.
<아니, 김향장, 장서기는 왜서 안 오는거요?>
최국장이 김향장에게  물었다.
<재정국의 박국장이 오셨기에>
<재정국이라... >
<잠시후에 건너 올겁니다. 최국장님이 오셨는데 안올 수 없지요.>
김향장이 최국장의 위신을 올리치켜 세웠다.
향정부에서 익힌 처세술이였다.
김향장은 이미 맥주고뿌로 석잔을 굽냈다.
첫 잔은 김향장 자신이 권했고 두번째 잔은 최국장이 권했고 세번째 잔은 수리국의 부국장이 권했다.
술 석잔 덕분에 150만원짜리 공사금이 180만원으로 늘었다. 최국장이 흔쾌히 180만원을 주겠으니 자료를 다시 올리라고 하였다.
대단한 성적이였다.
공사대금에서 얼마만큼이라도 쓸 돈이 생겼으니 말이다.
장서기가 들어왔다.
<최국장, 안녕?>
장서기는 고수답게 들어오자 바람으로 최국장과 포옹하였다.
<재정국의 박국장이 불시로 왔기에, 나와 김향장이 이렇게 분공해서 접대중입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아니. 아니. 김향장에게서 다 들었습니다. 하하하. 그러잖아도 장서기 한테 쳐들어가자고 준비중이였는데.>
 두분의 자리는 금방 따스해졌다.
<장서기, 저 그럼 박국장한테 가보겠습니다.>
김향장이 공손하게 자리에서 일어나 장서기 귀가에 대고 소곤댔다.
장서기가 고개를 끄덕였다.
<최국장님, 잠간 실례할게요. 나가서 박국장에게 인사하고 올게요.>
김향장이 고개숙여 최국장에게 인사하고 나왔다.
<김향장이 진짜 화끈하네. 장서기, 향장 하나 잘 두었습니다. 전도 있소. 전도 있어. 하하하.>
최국장의 칭찬소리가 뒤에서 기분좋게 날아왔다.
 
5
정부 앞으로 백메터만 더 가면 두만강으로  내려가는 산비탈이 있고 산비탈 따라 내려가면 버들방천에 천렵하기 좋은 명당이 있다. 아무리 비가 와도 옷이 젖지 않을 정도로 버들잎이 촘촘하고 하늘이 보이지 않을 만큼 수풀이 우거져 한여름에도 동굴만큼 시원하다.
향정부 앞에 있고 향간부들이 거의 날마다 손님 접대로 천렵을 하다보니 이곳은 향간부들의 전용터로 되고 말았다.
구수한 돌종개탕을 가운데 놓고 웃통을 벗어던진 향규률검사위원회 오서기와 현의 규률검사위원회 래신래방사무실의 렴주임 일행이 술을 마시고 있고 무장부 김간사는 심부름하기에 여념없다.
벌써 소주 세병이 굽이 나 땅에서 뒹굴고 있다.
두만강에서는 최저 매인당 한병씩 마시는 것이 기본이다.
<오서기, 내가 바야흐로 퇴직한다는 소문이 돌긴 돌았는 모양이네>
렴주임이 술잔을 들고 말했다.
<무슨 말씀이신지…>
오서기가 공손히 물었다. 급은 차이가 없지만 필경 현의 령도이니 공손해야 한다.
<향장 서기는 왜서 그림자도 보이지 않소? >
<아까도 말씀 드렸다 싶이 지금 손님이 몇패 같이 오다보니 상황이 복잡해졌습니다.>
오서기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흐흐흐. 동주임, 내가 그냥 확 해버릴가?>
렴주임이 동행한 래신래방사무실의 부주임과 눈을 마주치며 물었다.
<사실 지난 몇해간 렴주임께서  래신래방사무실에 올라온 신고신을 많이 덮었습니다. 주에까지 올라간 것도 다 가져다 덮었지요. 렴주임이 아니였더면  아마 이곳 령도들이 큰 코 다쳤을 수도 있었을 겁니다.>
래신래방사무실의 동부주임이 렴주임을 대신해 말했다.
<와! 그랬어요? >
오서기 눈이 둥그래졌다.
<림지문제. 농촌주택개조보조 등 문제 땜에 신고신이 많이 올라옵니다. 보여 드릴가요?>
동부주임이 한수 더 떴다.
<오, 아. 아. 알았습니다. 알았습니다.>
오서기가 일어났다.
그는  오줌을 누러가는 척 하며 김향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김향장, 여기에 왔다 가야겠습니다.>
오서기는 방금 들은 것을 간략해 전달했다.
김향장은 전률을 느꼈다.
돈을 뜯어먹은 건 하나도 없지만 어느 향에서 검거신이 올라 온다거나 민원이 많을 경우 출세 가도는 막히나 다름없다. 선진집체로 안되는 건 제쳐놓고 군중사업을 잘 못한다는 리유로 발전대상에서 배제된다.
문제는 이들의 문제가 자칫 심각하게 번질 수 있었다.
송민정은 유부녀와 오입질하다 얻어깨지고  향의 토지조리는 카라오케에서 오입질하다 파출소에 잡혔다. 불과 7일전에 발생한 일이였다. 그냥 잡혀 벌금이나 하고 나왔더면 아무런 일도 없을 것을 토지조리를 따라다니며 술이나 얻어먹던 양아치들이 건방조리가 잡혀가게 되자 경찰에 대항해나섰고 행패질까지 하였던 것이다.
토지조리를 너무 방임하게 내버려둔 후과였다.
 향에서 보증을 서고 데려 나왔으나 일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마누라가 못살겠다고 나누웠고 설상가상으로  토지조리가 부정축재를 했다는 신소신이 또다시 날아들기 시작했다.
자칫하면 검거신을 깔아둔 것도 죄로 될 수 있을 수 있었다.
김향장은 규률검사위원회 오서기가 토지조리를 다스리려 할 때 막지 말고 검거신대로 언녕  처리했더면 자기의 출세길도 앞당겼지 않았을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출세를 위해서 랭혈동물이 되여감을 스스로도 느끼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래신래방사무실 렴주임한테  가지 않을 수 없었다.
<박국장님, 규률검사위원회 래신래방사무실의 렴주임도  오늘 오셨습니다. 저 이잔을 올리고 그분들에게 한번 가봐야겠습니다. >
 김향장이 또 다시 술잔을 따라주며 재정국의 박국장에게 말했다.
<그래? 어데 앉았는데…?>
박국장이 되물었다.
<두만강가에서 천렵하고 있습니다>
<와, 좋은 놀음 하는구만, 우리도 거길 갈 걸 그랬어.하하하.>
<앞으로 박국장께서 오신다면 산천어를 잡아다 천렵을 조직하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열심히 모시겠습니다.>
김향장이 고개를 숙였다.
박국장이 손사래를 쳤다.
<아니, 아니. 조직부에서 있을 땐 아니 이랬는데, 너무 겸손하니 이상하다니까…>
박국장이 머리를 흔들었다.
<자,자 ,자, 내 잔도 한잔 마시고 가라고, 그리고 현에 오면 들리고. 다 전도가 창창한 젊은인데,  인상이 좋소 . 좋아.>
박국장이 술을 한잔 따라 직접 김향장에게 주었다.
단독으로 한잔 마시려는 것이다.
김향장은 넙죽 받았다. 재물신이 주는 건 아주 큰 영광중의 영광이라고 할 수 있다.
<같이 한잔 하자고. 자 , 건배!>
김향장은 한방울도 남기지 않고 입에 털어넣었다.
<통쾌해! 통쾌하구만, 정말 맘에 들어. 그리고 아까 말했던 그 돈은 내가 돌아가서 인츰 해결해줄게. 전도 유망한 향장을 적극 돕는 게 가장 가치있는 일이라니까. 내가 현장, 서기들과도 당신 말을 해놓을게. 걱정 말라고. >
박국장은 김향장의 어깨를 다독이며 격려하였다.
돈까지 해결해주고 현장, 서기와 말을 해놓겠다는 말에 김향장은 박국장과 또 한잔 건배하고 나왔다.
뿌듯해났다.
향정부를 위해 오늘만큼 큰 일을 한 적이 없는 것 같았다. 술상에서 만사가 다 해결 된 셈이였다.
전화벨이 울렸다.
마누라에게서 온 전화였다. 분명 술을 왜 먹냐고, 죽자고 그러냐고 핀잔을 하기 위해 걸려 온 전화일 것이다.
지금 통화 할 순 없었다.
술을 마이지 말라고 아침부터 닥달한 마누라 말을 듣지 않고 술을 마셨다. 그것도 한두잔 마인게 아니라 열심히 마셨다. 통화하면 금방 들통 날 것이고 마누라가 야단칠 것이였다.
김향장은 전화를 받지 않고 벽에 기대여 메시지를 넣었다.
<부인님, 부주장이 오셔서 회의중입니다.  안녕히>
 술을 적게 마시라는 마누라의 충고에 거짓말로 화답하는 자신이 한심했는지 김향장은 메시지를 넣고는 쓴 웃음을 지었다.
 마침  수리국의 최국장과 술을 마시던 장서기가 나왔다.
 <장서기, 함께 가봐야 될것 같은데요>
  김향장이 규률검사위원회 오서기가 전하던 말을 그대로 전달하였다.
<그래? 이거 큰 일 났는데...?.>
장서기의 눈이 휘둥그래 졌다. 처음 보는 놀란 모습이였다. 털어서 먼지 안나는 사람이 없다고, 장서기도 지난 몇해간 분명 꺼림직한 일이 있을 것이였다. 물론 김향장이 장악한 일도 적지 않았다.
<그런데 어쩔가?. 양부주장이 40분 후면 들어선다는데…>
장서기가 긴장한 표정을 감추지 못한채 난색을 지었다.
<그럼 제가 먼저 가서 접대하고, 저녁에 양부주장이랑 가신 다음 한번 더 접대하면 어떨가요?>
김향장이 기막힌 아이디어를 내놓은듯 말했다.
<오, 옳소, 주장들은 어차피 인츰 자리를 뜰것이니까, 당신 어떻게 하나 그분들이 저녁까지 먹고 가도록 붙들어두오. >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시간되면 양부주장에게 한잔 술 부으러 오오.>
<네. 알겠습니다>
김향장은 식당을 나왔다.
다리가 휘청이고 머리가 휑뎅그레했다.
<내 얼굴이 괜찮아? 취한 것 같아?>
김향장은 문어구에서 해바라기를 까고 있는 식당 접대원 아가씨에게 물었다.
<아니, 괜찮은데, 앉으세요.>
접대원 아가씨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얼굴은 빨갛지 않은데. 좀 힘들어하는 것 같아요. 김향장은 워낙 술이 세잖아요.>
얼마나 많이 마셨으면 복무원들도 술이 세다는 말을 할가 싶어서 서글퍼 졌다.
 멀리서 퉁퉁 거리며 손잡이 뜨락또르가 달려왔다.
김향장은 뜨락또르를 가리켰다.
<저기 손잡이 뜨락또르를 불러주오. 두만강에 천렵하는데까지 실어다 달라고 해주오.>
<네. 알았어요>
뜨락또르 운전기사는 김향장이 불러준다고 하자 흔쾌히 다가왔다.
향장이 타겠다고 하는데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인가?
두만강에 가는 길에는 손잡이뜨락또르가 최고다.
산양처럼 못가는 길이 없다.
김향장은 털썩이며 굴러가는 손잡이 뜨락또르에 몸을 싣고 눈을 감았다.  웬일인지 자꾸 눈을 감고 싶었다.
<올라 타라>
뜨락또르 운전기사는 아무리 봐도 취해서 휘청이며 앉아있는 김향장이 불안했던지 지나가는 젊은 청년을 불러 태웠다.
그리고는 눈짓으로 잘 살피라고 하였다.
낯선 청년이 올라 탄것도 모른채 김향장은 뜨락또르에 몸을 맡기고 두만강가로 달려갔다.
<저기 오는 것 같은데요>
오서기가 뜨락또르 소리를 듣고 누군가 왔을거라는 짐작으로 일어서며 말했다.
<그래?   와야지. 안오면 안되지. 재정국이면 어떻고 수리국이면 어떻고, 우리에게 잘못 보여 좋을게 하나도 없어.>
렴주임이 취기 오른 얼굴에 불쾌감을 감추지 못한채 씨부렁거렸다.
 오서기가 김향장을 뜨락또르에서 손을 잡아 부축여 내렸다.
젊은 청년이 도와주지 않았으면 내릴 수도 없을 것 같았다.
<김향장, 술을 많이 하셨네요. 괜찮습니까?>
오서기가 걱정스레 물었다.
<아, 오서기구만, 오늘 정말 많이 마셨소. 큰 투자항목을 따오느라 수리국의 최국장과 좀 많이 했지. 그리고 재정국 박국장과도 아주 좋은 일을 만들었어. 와…바쁘다..오늘 손님이 최고로 많이 왔어. 한꺼번에 서너패가 들어오니 와, 힘들어죽겠소>
김향장이 겨우 말했다.
오서기가 휘청대는 김향장의 팔을 잡았다.
 <괜찮아, 괜찮아. 내가 이러면 안되지. 안되고 말고>
김향장이 오서기 팔을 뿌리치고 도정신하고 자리에 멈춰섰다. 그리고는 정신을 가다듬고 심호흡하고 힘껏 입김을 뿜어냈다.  김향장의 숙취해독의 한 방법이였다.
김향장이 돌아섰다. 그는 오서기의 어깨에 다정히 손을 얹었다.
<오서기, 난 당신에게  미안해,>
<아니. 무슨 말씀을...>
불시로 던져 오는 말이라 갈피를 잡지 못한 오서기는 눈이 둥그래졌다.
<당신의 자리를 내가 꿰찬것 같아 항상 빚진 맘이야. 조직의 배치라고 내려왔지만 그때 내가 오지 않겠다고 버틸 수도 있었지...>
김향장이 무한한 상념에 잠긴듯 눈을 감았다.
<김향장, 무슨 말씀을...>
오서기는 당황해 났다. 듣고 싶었던 얘기였지만 정작 듣고 보니 몸둘바를 몰랐다.
<그랬더면 향장자리는 당신 것이지. 내가 안 왔더면 당신이 향장이 되고 서기로 될 수 있었지, 나 때문에 당신은 큰 영향을 받았어. 큰 영향을...>
김향장의 눈길엔 진정이 흐르고 있었다.
분명 그랬다. 남의 자리를 꿰찼지만 남은 건 없었다.
차라리 오지 않았더면 이렇듯 허무하지 않았을 것 같았다.
<무슨 말씀을, 저는 김향장에게 감사할 따름입니다. 항상 저의 어깨를 세워주고, 체신을 생각해주는 김향장의 그 마음을 전 잊지 않을 겁니다>
오서기가 김향장의 두손을 잡고 절절하게 말했다.
집을 떠나 고생하는 김향장의 사정을 잘 아는 오서기였다. 김향장이 술을 마시며 돌아치는 모습을 보고  오서기 마누라가 오죽하면 남편이 향장이 되지 않은 것이 정말 잘된 일이라고 말했겠는가...
<당신 맘대로 하오. 손님이 오면 절대 당신 돈을 팔지말고 당신 맘대로 손님을 접대해 보내오.  다른 사람들이 먹은건 결산 못해줘도 당신이 먹은건만은 내가 절대적으로 결산해줄게. 정말이요>
김향장은 큰 결심을 내린 듯이 입을 옥물었다.
마음대로 술을 사먹이고 손님 접대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실세임을 잘 아는 오서기는 감동되여 고개를 끄덕였다. 어찌보면 자기의 시대가 열리고 있는 것이다.
<고맙습니다. 김향장님.>
오서기가 김향장의 두손을 더욱 굳게 잡았다.
<자, 가자고, 래신래방 사무실의 렴주임이 오셨다는데 가서 잘 접대해야지>
김향장이 앞장서 걸어갔다.
렴주임 일행이 앉아있는 것이 보이자 김향장이 걸음을 멈추고 오서기에게 말했다.
<오서기, 오늘 당위 장서기가 양부주장 땜에 못오고 저녁에 한턱 내기로 하였소. 알았소?>
<네, 알았습니다.>
<렴주임 일행을 절대 보내면 안되니까, 오늘 쓰러질 때까지 마셔야 하오. >
<네, 그러잖아도 렴주임이랑 못 돌아가게 집에다 마작을 조직하였습니다.>
<오, 참, 잘했소.>
<그리고 멧돼지나 노루고기를 삶아놓을가요?>
오서기가 조심스레 물었다.
<알아서 하오. 내가 아까 말했잖소. 당신에게는 항상 푸른등을 켜겠다고...>
김향장이 미소를 지으며 오서기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종이 한장 차이로 어색하던 관계가 이처럼 소탈하게 번질 줄 생각지도 못했다.
오서기는 신바람 실린 듯 앞장서 걸어가 렴주임에게 신고하였다.
<렴주임, 김향장이 오셨습니다.  술을 한잔 붓겠다고 합니다.>
<어. 그래?>
렴주임이 어정쩡해 일어났다.
<김주임, 안녕하십니까?>
김향장이 깍듯이 고개를 숙였다.
 <아이쿠 김향장이 오셨네, 오늘 대단히 바쁘다고 들었는데. 오지 말거지, 왜 바쁜 걸음을 하면서 그러오. 우리야 이렇게 조용히 먹다 가면 되는건데.>
렴주임이 자리에서 일어나 김향장을 부둥켜 안고 너스레를 떨었다.
 <반갑습니다, 반갑습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죄송하긴 뭐, 웬 말씀을. 바쁘면 안 와도 되는데...>
렴주임이 련속 속에 없는 말을 뿜어댔다.
<렴주임이 오셨다는데 제가 오지 않아서야 되겠습니까? 그래서 한잔 부으러 왔습니다. 술을 많이 마셨으니 량해해주십시오>
김향장이 자꾸 처져 내려오는 눈을 간신히 올리 뜨고 말했다.
<아니, 아니야. 난 당신을 보니 진짜 기뻐. 진짜 기쁘다고. 장래가 유망한 젊은 후계자라니까, 앉소. 앉소.>
김간사가 어느새 잡았는지 조개를 몇마리 깔끔히 튀를 해서 올렸다.
 <김향장이 오니 벌써 다르구만, 조개가 올랐잖소? 하하하>
 <아니, 아닙니다. 다 렴주임 덕분입니다. 렴주임이 복이 있어 조개가 뽑힌 겁니다.>
김향장은 술을 부어 렴주임에게 올린 후 고개를 돌려 김간사에게 말했다.
 <어이, 김간사 수고했소. 그리고 수고스런대로 조개를 좀 많이 뽑아주오. 렴주임이 집에 가지고 갈 수 있게>
 <네. 향장님, 알았습니다>
김향장이 조개까지 집에 보내주겠다고 하자 렴주임의 쪼프라진 얼굴이 활짝 피기 시작했다.
김간사가 입에 밥을 씹으며 조개 뽑으러 또다시 물에 들어갔다.
 김향장이 술잔을 들었다.
 술잔이 동그래졌다 기울여졌다 하며 희미하게 보였다.
 그는 혼신의 힘을 다 모아 정신을 집중하였다.
그리고는 아주 천천히 또박또박 한마디 한마디 찍어냈다.
<오늘 저희  향에는 아주 귀한 분들이 오셨습니다. 귀한 분들의 잔치는 제1부와 제2부로 나뉩니다>
일시 말뜻을 알아듣지 못한 좌중이 조용해졌다.
<제1부는 두만강가에서 펼치고 제2부는 식당에서 펼치는데, 주인공은 바로 현규률검사위원회 래신래방사무실의 렴덕호 주임입니다>
렴덕호는 바로 렴주임을 말한다.
<와! 멋지다. 멋져!>
그제야 말뜻을 알아들은 좌중이 호응하고 박수치자 분위기가 또 다시 끓어올랐다.
<제2부에서는 존경하는 우리 향의 장서기가 직접 접대합니다. 장서기는 지금 주정부 양부주장을 접대중인데. 장서기는 한시급히 부주장을 보내고 제2부에서 렴주임과 만나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렴주임의 어깨에 날개 달렸다.
<야, 내 이래서 동산향에 오기 미안해 한단데. 장서기를 비롯해 모두 어찌나 접대를 잘하는지…좋소. 좋소. 저녁까지 먹고 가기오. 자, 자, 김향장이 오셨는데  우리의 우의를 위해 한잔 하자고>
김향장이 건배제의를 하기도전에 렴주임이 한잔 쭉 마셔 버렸다.
김향장도 술잔을 들었다.
술잔이 물동이만큼 무거웠고 버거웠다.
<김향장, 바쁘면 마시지 마십시오. ...>
오서기가 걱정스레 김향장에게 귀뜸했다.
김향장에게 좋은 인상을 받은 렴주임 역시 김향장더러  술을 억지로 마시지 말라고 하였다.
<김향장, 바쁘면 마시지 말라고 >
  김향장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니지. 렴주임과 꼭 한잔 해야지. 제1부에서 렴주임과 따끈하게 한잔 마시고  제2부에서 다시 마십시다>
<아니. 괜찮아. 우린 이제 제2부에서 코 삐뚤어지게 마시자고. 그 잔은 내가 대신 마실게. 당신의 성의를 충분히 받아들였소. 잊지 않을게>
렴주임이 물을 담은 술잔을 김향장에게 주고 김향장의 술잔을 자기가 빼앗았다.
<김향장, 주정부 부주장도 오셨다는데, 얼른 가보오. 여기는 오서기가 있으니 괜찮소. 우리가 뭐 남인가? 사양 말라고>
퇴직을 앞둔 어른답게 렴주임의 한마디 한마디는 진정에 넘쳐 들려왔다.
 <네. 그럼 사양하고 저, 잠간만 눈을 붙이겠습니다>
김향장이 앉은 자리에 앉아 졸기 시작하였다.
<자리에 눕히오. 얼마나 힘들었으면…>
렴주임이 혀를 찼다.
<아니. 그냥 둬두십시오. 흔들면 깨나니까, 10분 정도 저렇게 자면 인츰 깨날 겁니다>
김향장의 습관을 잘 아는 오서기가 김향장을 자리에 눕히려는 래신래방사무실의 동주임을 말렸다.
잠깐 눈을 붙이는 사이 김향장은 꿈을 꿨다.
향에 문화중심을 건설하고 성대한 오픈식을 하는 꿈이였는데, 양부주장을 비롯한 주와 현의 령도들이 대거 참가하였고 그 자신은 최고의 공신으로 꽃다발 속에 묻혀 있었다.
날마다 술을 마시며 대외관계를 처리한  보람으로 동산향을 위해 일떠낸 기념비적인 건축물이고 업적이였다…
 
친척집이 아닌 아래 마을의 친구집에서 링게르 치료를 받던 송민정은 자숙의 시간을 가졌다. 그날 얻어맞고 개에게 물린 것이 여간 아픈 것이 아니였다. 이미 근 열흘이 지났는데도 아픈 건 여전했다. 
광견병이 걸리면 어쩌나 하는 생각보다도 더 무서운건 개포수가 덮칠 일이였다.
불알을 잘라 버리겠다고 포효하던 개포수의 그 모습을 잊을 수 없었다. 더구나 불알을 물어뜯으려고 으르렁 거리던 사냥개의 파란 눈빛이 아직도 선했다. 가령 잽싸게 두손으로 숨통을 보호하지 않았더면 아마 그의 거시기는 터진 닭알로 되였을 것이다.
 다행히 오줌을 누며 보니 거시기는 정상으로 돌아왔다. 아픈 며칠은 아무런 느낌도 없던 것이 상처가 좀 나아지자 아래에 느낌이 오며 근질거렸다. 마누라 곁에 가고 싶었다. 한뉘 바람피며 살았기에 그의 마누라는 인젠 전혀 개의치 않았다. 와도 그만 가도 그만 근본 관계를 하지 않는 마누라를 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몰랐다. 마누라에게 미안한 생각이 없는 건 아니지만 고운 녀자만 보면 꿈틀대는 그의 욕망은 좀체로 걷잡을 수  없었다.
 수많은 녀자를 다루면서 여지껏 한번도 실수하지 않았으나 이번에는 크게 랑패를 보았다. 개포수를 그저 그냥 개나 끌고 다니는 사람으로 본 것이 잘못이였다. 
보통놈이 아니였다. 보름동안 구류당한다던 개포수가 불과 일주일만에 나왔으니 말이다.
송민정이 똥이 마려워 변소칸에 갔다 오니 수염이 터부룩한 개포수가 와있었다. 송민정은 흠칫 놀랐지만 내색을 내지않고 알은체 하였다. 피끗 내다보니 자기의 불알을 물어 뜯으려던 그 사냥개도 마루에 앉아있었다.
<어떻게 할 건데...?>
개포수가 물었다.
<죄송합니다.>
송민정이 고개를 숙였다.
<난 손해를 받아야겠어. 남의 집 음식을 먹어도 값을 내는 법이거늘, 남의 마누라를 따먹었으면 값을 내야지...>
개포수가 중화표 담배를 빼물었다.
보란듯이 말이다.
송민정이 피우는 장백산 담배에 비하면 몇배 더 비싼 중화표 담배였다. 산짐승을 가져 갈 때마다 공안국은 물론, 검찰, 법원의 사람들은 언제나 한보루 혹은 몇보루씩 남겨주고 갔다. 그덕에 개포수는 생색을 낼만한 장소에 갈 때마다  중화표 담배를 들고 다녔다.
 <법이 개떡 같아서, 제길할, 남의 마누라를 빼앗은 놈은 집에서 링게르를 맞고, 피해를 본 나는 구류소에 가고...제길할>
개포수가 욕을 해댔다.
<남의 마누라를 먹으니 어땠어? 욕심나면 내가 줄테니까 데리고 살라고.>
개포수가 거침없이 뱉어냈다.
그날처럼 우지막지하게 때리고 욕하려니 했는데 그렇게 안하는 것이 다행이였다. 인젠 정말 더 이상 매 맞을 자신이 없었다.
<무슨 요구가 있으면 말하십시오. 제가 책임질만한 일은 책임질게요>
송민정이 기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어떻게 책임지게?>
개포수가 능글지게 웃으면서 말했으나 흉악스런 눈길은 여전했다.
<어떻게 해주면 될지...?>
<예전처럼, 다른 사람을 해줬던 것 이상으로 해주면 돼.그렇지 않을 경우 나는 정부를 찾아가 몽땅 폭로하고 당신을 공산당 대렬에서 내 쫓을 거야>
개포수가 눈에 독기를 품고 말했다.
바람 피고 들키거나 억지로 한판 얼려서 따먹고  계속 만나기 위해 대가성 약속을 해줬던 것이 들통난 것이다. 솔직히 송민정에게서 민정의 보조금을 타거나 보조금으로 기업을 차린 사람치고 마누라를 바치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수단과 방법이 다양한 송민정은 민정 보조금을 미끼로 이쁜 부녀자들과 접촉하고 유혹하였던 것이다.
한시름 놓였다. 보조금을 넉넉히 내주거나 타게 만들어주는 데는 자신 있었다. 
어깨가 펴졌다.
송민정 같은 바람둥이들은 주먹이 무섭지 돈이 무서운게 아니다. 돈을 바라고 달려들면 그건 상수가 아닌 하수이기에 풍류계에서 굴러온 경력이 화려한 송민정은 피씩 웃었다.
<자 ,그럼 내가 당신들이 아쉽지 않게 해줄거니까 시름 놓으라고.>
어느 사이에 반말이 나갔다.
<래일로 내가 5천원을 줄게.시내에 자그마한 집이나 하나 사라고.  그대신 한가지 약속을 지켜야 해. 알겠어?>
5천원이란 말에 개포수의 눈이 데룩거려졌다. 5천원이면 현성 부근의 자그마한 벽돌집을 살 수 있는 돈이다.
 이런 부업거리가 또 어데있는가 싶었다.
 <무, 무슨 약속?>
<마을에다는 소를 열마리 사서 방목장에 넣었다고 말하라고,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알지?>
<네. 알겠습니다.>
개포수가 공손해 졌다. 어차피 두달에 한번도 곁에 갈가 말가하는 마누라가 아니던가...
개포수는 얌전하고도 겸손하게 인사하고 나갔다. 그 뒤를 따라 송민정의 거시기 맛을 보겠다고 미쳐 날뛰던 사냥개가 주인처럼  역시 꼬리 내리고 우줄우줄 따라갔다.
 
<탱탱탱!>
뜨락또르소리가 귀전에 울리자 김향장은 눈을 떴다.
손잡이 뜨락또르가 곁에 멈춰서있었다.
양부주장을 만나러 가야 된다는 것을 안 눈치 빠른 무장부 김간사가 어느 사이에 아래켠에서 천렵하는 사람들의 손잡이 뜨락또르를 빌어왔던 것이다.
김향장이 일어서려 하자 오서기와 김간사가 부추겨 일켜세웠다.
<렴주임, 저 먼저 실례하겠습니다. 양부주장에게 드릴 말씀도 있고 하니까 꼭 가봐야 되겠습니다. 저녁에 다시 봅시다.>
분명 10분 정도밖에 자지 않았으나 김향장의 창백한 얼굴에는 취기가 사라져 있었다.
자세도 한점 흐트럼 없었다.
김향장은 무장부 김간사가 모는 뜨락또르에 앉아 양부주장이 계시는 술좌석으로 향했다.
날마다 술만 마시는 것 같아도 김향장의 가슴에는 항상 분명한 목표가 있었다. 술만 마시다 간 향장이 아닌 뭔가 업적을 남기고 간 향장으로 남고 싶었다.
그의 최고 소망은 동산향에 문화중심을 세워 농민들의 문화생활을 다채롭게 하고 농민들의 문화소질을 높여주는 것이였다.
김향장은 양부주장이 몇해전에 동산향에 내려와 문화중심을 건설해주겠다고 대답했던 사람이라고 들었다. 그런 부주장이 왔으니 향장으로서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물론 장서기와 론의된 것도 아니다.
김향장의 머리가 맑아지기 시작했다.
술좌석에서 30초 이내에 좌중을 휘어잡아야만 깊고 멋진 인상을 남길 수 있음을 잘 아는 김향장은 무슨 말을 어떻게 어떤 어조로 어느 시점에서 해야 된다는 것을 하나둘 머리속으로 잘 정리하였다.
김향장이 도착하였을 때는 술좌석이 아주 도도하게 무르익어있었다.
<개고기는 그래도 농촌에 와서 먹어야 제맛이라이. 특히 변강에서 먹는 개고기 맛이 최고요. 최고!>
개고기에 소주를 마이기 좋아한다고 소문난 양부주장이 큼직한 숟가락으로 신선로에서 개고기를 무득히 떠서 입에 넣으며 말했다.
<한잔 더 하시지요. >
현정부 강부현장이 양부주장의 잔에 술을 부으며 공손히 말했다.
<마이기오.>
양부주장이 호쾌히 술잔을 비웠다.
김향장이 들어섰다.
술을 엄청 많이 마인  사람같지 않았다.
<어, 김향장이 왔구만.>
장서기가 일어섰다.
장서기는 양부주장에게 김향장을 소개하였다.
<양주장님. 우리 향의 김향장입니다. 현당위조직부에서 과장으로 있다가 향장으로 왔는데 사업을 참 잘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오, 그래. 인물도 좋구만, 앉소, 앉소. 수고 많소. 수고 많아>
양부주장이 반색하였다.
<후에 왔으니 내 술을 받소. 향진 간부들이 정말 수고 많다이. 나는 정말 향진 간부들과 만나볼 때마다 감동을 받소.  오면서 강부현장에게서도 많이 들었소. 잘하라고>
양부주장은 직접 김향장에게 술을 따라주었다.
<네. 감사합니다>
김향장은 고개 숙여 경례 올리고 술잔을 비웠다.
가슴 가득 술이 찬듯 울컥 올라오는 것을 겨우 참았다. 종래로 없었던 증상이였다.
피기가 아래로 다 빠지고 오장륙부가 요동치는 것만 같았다. 
<강현장님, 이번에는 우리 김향장이 한잔 권하는게 어떻겠습니까? >
장서기가 강부현장에게 청시하였다.
<좋지. 좋구말고. 제일 고생하는 사람인데. 김향장, 한잔 올리오. 양부주장님도 당신을 아주 높게 평가하는데…>
강부현장이 걸걸 웃으며 동의하였다.
김향장은 혼신의 힘을 다해 무릎을 꿇고 앉아 양부주장과 강부현장에게 술잔을 올렸다.
<저의 꿈은 우리 향을 문화향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저희들 힘으로는 될 수 없읍니다만 양주장님께서 도와주신다면 금방 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양부주장께서 문화향진 건설에 큰 관심을 돌리고 계신다고 들었습니다.>
양부주장의 얼굴에 난감한 기색이 흘렀다.
<저는 어느 날엔가 양부주장과 함께 우리향의 문화중심 오픈식에 참석하고 싶습니다. 3천명  인민을 대표하여 올리는  술이니 량껏 드시기 바랍니다.>
김향장이 술잔을 들었다.
<양부주장님. 지난 번에 전용 자금이 국가에서 내려 온다고 했지요?>
강부현장이 긴장한 난국을 타개하고저 한마디 던졌다.
<그래, 그랬지. 그게 제때에 내려 못와 자꾸 늦어진다이>
양부주장이 이마의 땀을 훔치며 말을 이었다.
<문화중심은 꼭 지어야지. 지어야 말고. 내가 꼭 도울게. 그리고 자, 자, 젊은 향장이 권하는 술인데 한잔 하자고.>
양부주장이 좌중을 향해 말했다.
일행이 술잔을 들자 양부주장은  김향장의 술잔에  별도로 술을한잔 더  따라 주었다.
<정말 맘에 드오. 맘에 드오. 잘해보자고.>
<네. 감사합니다. 주장님>
양부주장이 한잔 건배하자 좌중에서 모두 건배하였다.
김향장 역시 건배하려고 술잔을 입에 가져다 댔다.
더 이상 넘어갈데가 없는 듯 술이 역겹고 무서웠다.
그러나 부주장과 약속을 하며 받은 술인 것만큼 마시지 않을 수 없었다.
그가 천천히 입가에 술잔을 가져다 대려눈 순간  밖에서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가 났다.
 영문을 알려고 밖에 나갔던 문서가 들어와 장서기의 귀에 대고 소곤대였다. 장서기의 얼굴이 굳어졌다.
알고보니 촌의 간부들이 주장을 만나 토지 보상문제에 대한 문제를 상소하겠다는 것이였다.
기층 농민들이 부주장을 만나면 향의 령도들에게 좋은 결과가 있을 수 없다. 빨리 조치를 대야 했다.
<옆집에 어서 저분들의 식사를 준비 시켜 주오.>
장서기가 문서에게 지시했다.
<무슨 일인데?>
양부주장이 물었다.
<아닙니다. 그냥 저희 집에 놀러 온 손님들입니다...자, 한잔만 더 듭시다>
<자, 그러기오.>
술상 분위기가 찬물을 맞은듯 조금씩 싸늘해져갔다.
김향장 역시 술잔을 들었으나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다.
술이 흘러들어가는 시간이 꼭 마치 오랜 세월이 흐르는 듯 길기만 했다.
술인 것이 아니라 맑은 물이 고향마을을 감싸고 촐랑대며 흐른듯한 느낌이였다.
고향 마을의 이쁜이랑, 동수랑, 철국이랑 다 보였다. 안해가 병원에서 진찰권을 들고 있는 모습도 떠올랐고 딸애의 모습도 떠올랐다.
하늘 나라로 떠나간지 오래되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손을 흔드 것도 보였다.
자기가 도랑물에 실려 둥둥 떠내려 가자 아버지 어머니가 그를 건져 내 품에 꼭 껴안았다. 
 그는 푹 자고 싶었다.
다시 못 일어나도 좋을 것 같았다…
 그러면서도 그는 오늘 점심에 채 마무리 못한, 양부주장과 문화중심건설에 대한 진일보로 되는 얘기를 못한 게 가슴이  걸려 속으로 중얼거렸다.
<문화중심은 꼭 만들어야 하는데…문화중심은 꼭 만들어야하는데…>
 누가 알아도 듣지도 못하는 말을 하면서 김향장은 눈을 감았다.
그날 오후, 현성으로 가는 길에는 현병원의 구호차가 경보기를 울리며 질풍같이 달리는 것이 보였다.
뿌연 먼지가 차를 덮으려는 듯 그 뒤를 쫓아갔다.
그때 김향장의 전화벨이 울렸다. 전화를 받는 사람이 없자 메시지가 날아들었다.
토지국의 신국장 일행이 래일 천렵하러 온다는 것이였다.

2016년 1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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